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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미래의 외계를 배경으로 ‘지금 여기’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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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듀나 김보영 배명훈 장강명 SF소설집

기업의 이윤추구, 전쟁의 자가발전 등

태양계 다룬 중편들로 현실 발언


한겨레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
듀나 김보영 배명훈 장강명 지음/한겨레출판·1만3000원


에스에프 작가 듀나·김보영·배명훈과 장르를 넘나들며 쓰는 작가 장강명이 의기투합했다. 태양계를 배경으로 한 중편 에스에프를 한편씩 써서 책으로 묶기로 한 것.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가 그 결과물이다. 태양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금성(장강명)과 화성(배명훈),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김보영), 해왕성의 위성 트리톤(듀나)이 무대로 선택되었다. 최소한의 약속 아래 쓰인 서로 다른 작가들의 소설임에도, 같은 작가의 연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일관된 문제의식과 현실 정합성을 지닌 작품들이다.

장강명의 ‘당신은 뜨거운 별에’의 주인공 유진은 기업이 후원하는 금성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해 여러해 동안 탐사선에 머물며 연구를 이어간다. 성장 과정에서 어머니 유진과 충돌하며 앙금이 쌓인 딸 마리가 어머니가 있는 금성에서 결혼식을 올릴 계획을 세우고, 회사는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모녀가 갈등에서 화해로 나아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방영하기로 한다. 과학 프로젝트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며 그를 위해 사실 왜곡과 이미지 조작을 서슴지 않는 기업의 생리, 그리고 그에 맞서는 모녀의 기발한 ‘복수극’이 흥미롭다. 장강명의 소설에서 지구인들은 아직 금성 표면에 상주하지는 못하고 로봇을 대신 내려보내 필요한 작업을 한다. 탄산음료 회사의 음모를 간파한 유진이 로봇에 탄 채 탈출하는 마지막 장면은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상상력을 자극한다. “번개와 구름과 연기가 로봇 헬멧 전면창에 반사된다. 그 덕분에 로봇은 강한 결의에 찬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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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배명훈. 김보영, 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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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의 ‘외합절 휴가’는 지구인들이 이미 화성을 식민지로 개척한 미래를 배경 삼는다. 화성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지만 ‘지구직 공무원’인 은경이 주인공. 모두가 휴가를 떠난 사이 청사를 지키는 당직자이자 ‘임시 총독’이 된 은경이 화성 도시들의 독립 시도에 따른 위기 상황을 책임지게 된다. 독립을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 은경이 ‘도미노에 의한 억제력’이라는 전쟁의 자가발전 논리에 휘말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긴박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통수권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기가 배치되고 발사 결정이 내려지는 전쟁 메커니즘이 섬?하다.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에는 인공지능 로봇 에이아이(AI) ‘훈’이 등장한다. 장강명의 로봇과 달리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신체를 지닌 그는 식량 보급용 우주선의 위기 관리 컴퓨터. 타이탄에서 벌어진 폭발 사고로 지하에 갇힌 재해민들이 구조 신호를 보내고 훈이 탄 우주선이 그에 응해 가는 중인데,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위기 관리 에이아이로서 상황을 파악해 가는 과정에서 훈은 반란을 촉발시킨 어떤 핵심에 눈을 뜬다.

“모든 순간에 존재하는 것, 숨 쉬듯 만연하는 것. 인간의 모든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것. 비합리인 줄도 모르고 행하는 비합리, 잘못이라는 생각조차 없이 하는 잘못. 들추어내면 어리둥절해하다 못해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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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김보영 배명훈 장강명 네 작가가 태양계를 배경으로 쓴 중편 에스에프를 모은 합동 소설집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를 내놓았다. 그림은 국제천문연맹이 태양과 태양계 행성들의 위치와 크기를 반영해 그린 가상도.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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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묘사되는 그 핵심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독자가 확인할 몫으로 남겨두자. “‘인간이 아닌’ 인간은 역사상 얼마든지 있었어. 노예라든가, 식민지 주민이라든가, 다른 인종이라든가”라는 훈의 말을 힌트 삼아 추측해 보시길.

듀나의 ‘두 번째 유모’는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리는 두 절대자가 태양계의 지배권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신들의 체스판”에 오른 “말”에 지나지 않는 인간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그린다. 장강명의 소설이 기업의 이윤 추구 논리에 맞서는 유진의 자유의지를 극적으로 부각시킨 반면, 듀나의 소설에서는 그런 자유의지조차도 지극히 무력해서 하찮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 거대한 신들의 놀이터에서 자유인이란 것이, 스스로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러나 주인공 샘물이 자신에게 던지는 이 질문이 마냥 부정적이고 허무한 답변만을 예비한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생각해보면 되겠지. (…)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라는 소설의 결말은 최소한의 가능성을 향해 스스로를 열어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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