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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미 재계의 반란...기업인들에게 버림받은 기업인출신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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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모두 책임"이라며 백인우월주의자 사실상 편들자

경제자문기구, 긴급회의 열고 트럼프에 '기구 해체' 통보

중앙일보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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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백악관의 경제자문기구인 전략정책포럼(SPF)에 소속된 기업 총수 12명이 긴급 전화회의를 열었다.

회의를 소집한 이는 세계최대 사모펀드 운영사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 재계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인사로 SPF의 의장이었다. 주제는 지난 12일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백인 우월주의 시위의 유혈사태를 두고 트럼프가 "양쪽이 모두 책임이 있다"며 사실상 백인 우월주의자 편을 들었다는 비난과 관련된 것.

슈워츠먼 회장이 "한마디씩 해달라"고 운을 띄었다. 회의 결과는 다소 의외였다. 당초 '인종주의 발언'에 우려를 표하는 수준에 그치려 했지만 참석자들은 거의 한결같이 "이럴 바에는 해산하자"고 요구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로런스 핑크, IBM의 지니 로메티,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리치 레서, 펩시코(펩시콜라 제조업체)의 인드라 누이 등 유명 최고경영자(CEO)들이 가세했다. 극소수 참석자가 "백악관에서 사업을 논의할 기회를 잃고 싶지 않다"는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압도적 다수가 45분만에 금방 '해체'에 합의했다"는 것이 월스트리트저널( WSJ)의 보도다. 슈워츠먼 회장은 이 결과를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고문에 전화로 전달했다(AP는 트럼프에 직접 전화했다고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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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오후 트위터를 통해 제조업자문위원단(AMC)과 전략정책포럼(SPF)의 해체를 선언했다. 사진은 지난 2월 백악관의 SPF 모임에 참석한 트럼프가 SPF의장인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과 대화하는 모습. 그 옆은 펩시코의 인드라 누이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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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같은 시간 또 다른 대통령 자문기구인 '제조업자문위원단(AMC)'도 긴급전화회의를 열고 해산을 결정하고 있었다. 이미 AMC에선 샬러츠빌 사태 이후 제약회사 머크의 케네스 프레이저 회장, 언더아머의 케빈 플랭크, 인텔의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캠벨수프의 데니스 모리슨, 3M의 잉거 툴린 등 7명의 CEO가 탈퇴를 선언한 상태였다. 회의 결과는 SPF와 마찬가지. 회의를 이끈 다우케미칼의 앤드루 리버리스 CEO는 백악관에 "현재와 같은 환경에선 더 이상 생산적 결정을 할 수 없다"며 '해체'를 통보했다.

'재계의 반란'을 접한 트럼프는 바로 이날 낮 트위터에 "AMC와 SPF의 기업인들에 (입장번복 촉구를 위해) 압력을 가할 바에야 차라리 두 조직을 해체하겠다. 모두 고마웠다"고 선언했다. 두 조직의 공식적인 해체 발표("편협과 인종차별주의, 폭력은 미국의 핵심가치에 대한 모욕으로 이 나라에서 절대 자리할 곳이 없다")는 트럼프의 트윗 이후에 나왔다. 트럼프가 '버림받는' 모양새가 아닌 트럼프 본인의 '해체 지시'처럼 보이게 의도적으로 연출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SPF, AMC차원의 성명 외에 각 기업별로도 트럼프를 강하게 비난하는 발언이 속출했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임직원에 보낸 이메일에서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재계나 정부의 지도자의 역할은 우리를 통합하는 것이지 갈갈이 찢어 분열시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 이멜트 회장도 "우린 위원회(AMC)에 미국 제조업을 촉진하고 성장하는 정책을 조성하기 위해 참여했던 것인데, 그런 목표를 이룰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BCG의 경우 그룹 내 여론수집 결과 83%가 경영진에 탈퇴를 요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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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백인우월주의자들과 이에 반대하는 시위자들 간에 유혈충돌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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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는 "이들 기업인들은 자문기구 참여를 통해 수조 달러에 달하는 인프라 투자에서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고 정부와의 창구 역할을 기대하며 참여했던 것"이라며 "'비즈니스'를 자신의 핵심 자격(credential)으로 여겨 온 트럼프의 입장에서 이번 두 조직의 해산은 획기적인 순간"이라고 지적했다. WSJ도 "트럼프에게 큰 원군이 돼 왔던 이들 조직의 해산은 드라마틱한 순간"이라고 보도했다.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 기업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번 사태가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편 마크 밀리 미 육군참모총장이 이날 트위터에서 "미 육군은 병영 내 인종주의, 극단주의, 증오를 수용하지 않는다. 1775년부터 우리가 수호해 온 가치에 반하는 일"이라고 말한 것을 비롯 육·해·공·해병의 4군 수뇌부가 일제히 트럼프 발언에 반기를 들었다.

WSJ은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등이 트럼프의 발언과 관련, 스스로 사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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