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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만물상] 대통령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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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세월호 유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또 눈물을 보였다. 지난 일요일엔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다가, 그제는 8·15 기념식에서 '그날이 오면'을 부르다가 손수건을 꺼냈다. 취임 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5·18 기념식에서도 울었고 일주일 전 가습기 피해자 유족들을 만나서도 눈이 충혈됐다. 이제는 뉴스를 본 사람들에게서 "또?" 하는 반응도 나오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를 보러 갔다가 펑펑 울었다. 그 영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영화가 끝나고도 10여분간이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저서 '운명'에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일어날 수 없었다고 썼다. 영화 '판도라'를 보고도 울고 '국제시장'을 보고도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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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가끔 눈물을 흘렸다.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청와대 뒷산에 올라 노래 아침이슬을 부르며 흘렸다는 눈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천안함 폭침 전사 장병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고 가락동 새벽시장에 갔다가 노점 할머니를 껴안고도 눈시울을 붉혔다.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한 달 후 담화를 읽다가 눈물을 흘렸고 작년 말 대형 화재가 난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정치인들의 눈물은 약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국민을 움직여 통합시키기도 한다. 처칠이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런던 시내를 돌아보면서 흘린 눈물은 영국 국민의 항전 의지를 굳게 했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 함보른에서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만났다. 천 길 땅속에서 석탄을 캐고 시신을 닦아 번 돈을 고국에 부치던 이들을 마주하고 울지 않을 대통령이 없었을 것이다. 애국가를 부를 때 시작된 흐느낌은 곧 모두의 울음으로 바뀌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서독 대통령까지 울었다. 많은 곡절을 넘어 여기에 이른 한국의 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한 장면이다.

▶문 대통령 눈물의 코드는 치유, 소통 같은 것들이다. 어쩌면 지금의 높은 지지율에는 이 눈물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눈물이 너무 잦아지면 공감의 크기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란 자리에도 감성이 필요하겠지만 이성과 지혜, 결단이 더 절실하다. 지금은 문 대통령 표현을 빌리자면 '6·25 이후 최대 위기' 상황이다. 본인의 눈물은 안으로 참고 국민이 울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신정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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