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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권대열 칼럼] 文 정부, 이제부터가 지금까지를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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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오늘 취임 100일… 70%대 지지라고 모두 같지 않아

북한, 원전, '善心'에 의심 커져 모호한 태도로 넘길 시기 지나가

이제부터 어떤 결정 하느냐에 앞으로의 정권 성패 결정될 것

조선일보

권대열 정치부장


오늘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이다. 일부에선 "믿을 수 없다"지만, 여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70%를 넘는다. 이 정도 지지율(78%)은 김영삼 전 대통령(83%) 이후 처음이다(한국갤럽 기준). 정부·여당은 이를 믿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지지율이 계속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권은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당 기간 높은 지지 속에 국정을 운영하는 '운 좋은' 정권이 될 수도 있다.

문 대통령과 여권(與圈)은 자신들이 어렵고 불리한 환경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탄핵이라는 비정상적 상황에서 충분한 준비 기간도 없이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은 유리하기도 했다. 지난 정권의 대실패 덕분에 얻은 반사이익이 한 보따리였다. 거기다가 지지율이 내려갈 만하면 지난 정부 인사들이 법정에서 '꼴불견'을 보여줬고, 제1 야당은 여전히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국민은 "그래, 저 사람들보다는 낫지" 하면서 지지를 유지해줬다. 그러다 보니 와이셔츠 입고 커피잔만 들어도 박수가 쏟아졌다. 차에서 내려 거리의 시민들과 '셀카'만 찍어도 '소통하는 정부'가 됐다. 감당 못 할 것 같은 선심 정책들을 쏟아내도 '생각이 있겠지'라고 봐줬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지지를 누릴 수 있는 시기는 지나고 있다. 이미 "또 와이셔츠에 커피냐"는 반응들이 나온다. 오늘 하는 기자회견 역시 "수시로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하고 질문도 받겠다더니 이제야 하느냐"고 한다.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돈을 걷어 서민들에게 쓰겠다는 정책도 "무리 아니냐"는 의심의 소리가 나온다.

조선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 초청 간담회에서 피해자 가족을 포옹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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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권이 앞으로도 잘 나가려면 70~80% 지지율부터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 속에는 '지난 정권에서 쌓인 한(恨)을 풀자'는 층이 있다. 그 못지않게 '지난 정권이 너무 못했기 때문에 일단 바꿔보자'던 층도 있다. 두 부류는 다르다. 전자(前者)들은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북한을 감싸주려 하고, 가진 자들 것을 더 빼앗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전(原電)도 4대 강도 실용(實用)보다는 이념으로 접근하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악(惡)으로 본다. 하지만 후자(後者)들은 지난 정권 때려잡기보다는 시스템을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고, 사드 같은 안보 문제는 북한이나 중국 눈치 보지 않기를 원한다. 비정규직이나 최저임금도 기업을 망치지 않는 수준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공무원 채용으로 일자리 늘리는 것은 아니라고 보며, 재정 고려 없이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건 "포퓰리즘"이라고 말한다. "현 집권 세력은 뭘 해도 싫다"는 15%~20% 정도의 층은 빼고 하는 얘기다.

이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국정을 펴나갈 것이냐에 정권뿐 아니라 나라 앞날이 달렸다고 본다. 이 정부도 '전통·열성 지지층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 원하는 대로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은 하는 듯하다. 100일까지는 두 토끼를 다 잡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대목에서 어느 한 쪽이 아닌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사드 배치는 안 된다"고 했지만 집권해 보니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러자 '임시 배치'라는 모호한 말을 들고 나왔다. 북핵 문제 풀 자신 있다고 큰소리는 쳤는데 김정은은 도발로 일관했다. 북한 비난은 해야겠는데 자기들 구상과 맞지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북한은 도발 말고, 미국은 전쟁 생각 말라'는 이상한 양비론을 펴고 있다. 도발한 쪽과 당하는 쪽을 같이 놓는 건 국제사회가 이상하게 볼 수밖에 없다. 탈(脫)원전도 외치긴 했는데 취임해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이걸 피하려고 공론화위원회라는 기구를 내세웠다. 복지를 늘리려면 돈이 필요한데 증세를 꺼냈다간 역풍 맞을 테니 부자들만 타깃으로 했다.

중간 지대에서 지지해주는 그룹은 이에 대해 '북한이든 원전이든 일자리든 자기들이 했던 말을 쉽게 버리기 힘드니 잠시 완충기를 갖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해줬다. 애매모호함도 신중함으로 봐줬다. 그러나 많이 기다렸고 의심도 커지고 있다. 계속 사드 배치를 눈치 보고, 북한에 단호하지 못하고, 멀쩡한 원전 공사를 정말로 중단시키면? '아! 고민이 아니라 눈속임이었구나'라고 생각할 것이고, 전략적 모호성이 아니라 무지(無知)의 결과였다고 볼 거다. 공론화 절차는 사술(詐術)로, 고소득자 증세는 편 가르기로 보이게 된다. 그들은 이 정부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를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를 보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선의(善意)로 믿었는데 배신으로 돌아오면 지지율은 한순간이다. 임기 첫해 9월까지 80%대였던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은 연말에 50%대로 떨어졌고, 임기 말에는 6%까지 갔다.

[권대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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