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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에그포비아… 살충제 검출 6곳 중 5곳이 '친환경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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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대란] 양계 시스템 3대 구멍

①묻지마 살충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데… 살충제 검사 계란은 0.00001%

②엉터리 친환경 인증

농가 절반 넘는 780곳 인증받아 직불금도 챙기고 비싸게 팔아

당국의 감독 태만 여실히 탄로

③깜깜이 생산·유통

쇠고기와 달리 '이력추적제' 없어

'살충제 계란' 사태로 계란의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우리 국민이 하루 1개꼴로 먹는 계란과 계란이 포함된 각종 식품에 대한 우려가 '에그포비아(Eggphobia·계란 공포증)' 양상으로까지 번진 데는 축산 시스템의 구조적인 결함도 한몫을 했다. 전문가들은 상황을 악화시킨 3대 요인으로 '방치된 살충제 오·남용' '구멍 뚫린 친환경 농장 인증' '유통 경로 추적도 못 하는 후진적 시스템' 등을 꼽고 있다.

방치된 살충제 오·남용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한 농장 측에선 "파리약인 줄 알고 뿌렸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축산 농민들이 '뿌려서는 안 되는 살충제가 뭔지' '허용된 살충제라도 용량이나 농도를 얼마로 해야 하는지' 등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경북에서 산란계 7만마리를 기르는 A씨는 "소규모 농장주 중에는 70·80대가 많은데 살충제 교육을 받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리는 일이 잦다"고 전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살충제 사용 가이드라인을 작년 8월 뒤늦게 만들었지만, 살충제별 사용법이나 주의사항 등에 대한 내용은 없어 오·남용을 막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일보

고개숙인 식약처장 -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참석해 업무 보고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지난 10일 국내산 계란과 닭고기가 안전하다고 한 류 처장의 발언에 대해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이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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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에 들어 있는 사용 설명서도 부실하다. 살포 빈도, 휴약 기간(약물이 동물의 몸에서 배출되는 데 걸리는 시간), 부작용 등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 없다. 주먹구구로 살충제를 뿌리면 해충의 내성을 키워 다시 살충제를 더 많이 쓰는 악순환 가능성이 커진다. 살충제 구입이 너무 쉬운 점도 문제다. 손영호 반석가금진료연구소장은 "살충제는 수의사 처방 대상 품목이 아니라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살충제 오·남용에 대한 조사는 미진하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 업무 보고에서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된 계란은 128억개에 달하지만, 유통 단계에서 검사된 계란은 농가 120곳에서 20개씩 2400개로 0.00001%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구멍 뚫린 친환경 농장 인증

16일까지 사용 금지 또는 잔류 기준 초과 살충제가 검출된 산란계 농장 6곳 중 5곳이 친환경 농장인 것이 확인됐다. 친환경 농장은 크게 두 종류다. 첫째 방부제를 안 쓰는 농장, 둘째 방부제를 안 쓰는 동시에 화학비료 없이 키운 농작물로 만든 사료를 먹이는 농장이다. 전체 산란계 농가 1456곳의 절반이 넘는 780곳이 친환경 농장 인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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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농장엔 정부가 직불금을 줘서 생산 비용을 지원한다. 이 농장들은 살충제를 쓰지 않는 등 친환경 기준을 지켜야 한다. 농식품부는 정기 조사를 하고, 기준을 어긴 농장에 대해서는 인증 취소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의 간·신장을 망가뜨릴 수 있어 사용 자체가 금지된 피프로닐이 검출된 2곳, 발암물질인 비펜트린이 기준 이상 나온 3곳 등이 친환경 농장이었다.

친환경 농장의 계란엔 친환경 마크가 붙어 팔린다. 일반 계란보다 40%까지 비싸다. 친환경 농장에서 생산한 계란이 전체 유통량의 60% 안팎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농식품부와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친환경 인증 관리를 하지만 실제 농장에 대한 검증은 민간 위탁 기관이 상당 부분 맡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유통 경로 추적도 안 되는 시스템

이낙연 총리는 16일 "계란은 생산·유통 과정이 거의 완벽하게 파악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계란은 산란계 농장에서 중간상이 수집해 유통업체에 넘기는데, 중간상들이 전산 기록 없이 수첩에만 적어놓는 경우가 많아 유통의 첫 단계부터 확인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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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적합 판정받은 계란은 판매 재개 - 16일 서울 서초구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소비자들이 판매가 재개된 계란을 살펴보고 있다. 정부는 이날 검사 결과 적합 판정을 받은 계란은 시판을 허용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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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은 쇠고기 등과 달리 이력추적제가 도입되지 않은 탓에 생산자가 검사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유통업체나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정부가 실시하는 등급제 판정을 받은 계란은 유통 과정 추적이 가능하지만, 등급제 참여도가 낮아 실효성이 떨어진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은 전체 계란 가운데 등급 판정을 받아 유통 경로가 추적되는 경우는 전체의 8%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나머지 92%는 유통 경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양모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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