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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밀집 사육’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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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유통 달걀 99% ‘공장식 축산’

‘살충제 달걀’ 사태까지 낳아

한마리당 공간 A4용지 2/3

옴짝달싹 못해 병균에 취약

“건강에 직결…악순환 끊어야”


한겨레

2012년 1월18일 경기도에 있는 한 양계장의 닭장에서 닭들이 모이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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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살충제 성분이 발견돼 달걀 출하가 중지되는 초유의 사태가 이어지면서 과밀하고 비위생적인 ‘공장식 축산’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이런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공장식 축산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4일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 피프로닐이 검출된 경기 남양주의 마리 농장은 닭을 대규모로 밀집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농장 안에는 3층으로 된 복도식 닭장 속에 닭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닭은 앞쪽에 설치된 모이통으로 겨우 머리만 내밀 수 있다. 국내에 유통되는 닭고기와 달걀의 99%는 이 농장처럼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생산된다. 가로·세로 50㎝ 크기의 철창인 배터리 케이지 안에 닭 5~6마리가 함께 산다. 닭 한 마리가 A4 용지 한 장의 3분의 2 넓이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이렇게 길러지는 닭들은 스스로 진드기를 제거할 수 없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진드기를 옮기는 감염원이 된다. 양계장 관계자들은 살충제 사용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좁은 공간에서 닭의 사육 밀도가 높아질수록 진드기의 서식 밀도가 높아진다. 이럴 경우 진드기가 빠르게 번진다”고 지적했다. 박봉균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닭을 사육하는 한 동(건물) 전체를 비워서 방역과 세척 작업 등을 하고 며칠간 비워두면 진드기를 자연스럽게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농가에선 닭고기나 달걀을 쉬지 않고 생산하기 위해 일부만 비우고 방역 작업을 해 제거가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새 기후변화로 고온다습한 날씨가 잦아지면서 공장식 축산 시설 내에선 진드기가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국립축산과학원 문홍길 가금연구소장은 “최근에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하면서 습기를 좋아하는 닭진드기들이 더 극성을 부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농가들이 살충제에 의존하는 사이 기존 살충제에 내성이 생긴 진드기까지 출현했다. 농가들은 독성 강한 금지 살충제에 손을 뻗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살충제 달걀’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닭진드기 전문방제 회사를 운영 중인 윤종웅 가금수의사회 회장은 “자체적으로 전체 산란계의 20% 정도에 해당하는 1400만수를 조사해본 적이 있다. 94%가 진드기에 감염돼 있었다”며 “닭진드기 문제는 오래된 문제인데, 살충제를 계속 쓰다 보니 내성이 생겨 더 센 살충제를 찾게 되고, 그러다 보니 피프로닐 같은 독성이 매우 강한 금지 살충제까지 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농가는 살충제를 농약방 같은 곳에서 손쉽게 살 수 있다. 수의사는 살충제가 관리 대상이 아니니까 신경을 안 쓴다”며 “대부분의 농가가 진드기 관리를 위해 금지된 살충제를 쓴다. 농가의 살충제 사용 여부가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문 소장은 “닭진드기는 영하 20도~영상 56도에서도 살아남는다. 흡혈을 못 하는 조건에서도 9개월 이상 살아남기도 한다. 이런 강한 생존력 때문에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도 퇴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최대한 닭진드기 유입을 막고 청결하게 농장을 관리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이라고 말했다.

산란계 사육 방식은 다양하다. 케이지로 대표되는 공장식 축산 외에도 닭을 풀 위에 풀어놓는 ‘자연방목’, 모래에 풀어 키우는 ‘평사사육’ 등이 있다. 이들 사육 방식으로 키워지는 닭들은 일광욕과 모래찜질을 종종 하기 때문에 진드기를 스스로 떨궈낼 수 있다. 평사 방식으로 닭을 기르는 전북 익산시 망성면 참사랑 동물복지농장 대표 유항우씨는 “우리 농장은 구조적으로 (살충제) 잔류물질이 나올 수가 없다. 닭이 진드기 등을 모래찜질을 통해 씻어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장식 축산은 조류인플루엔자 등 닭 관련 파동이 일 때마다 주범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농가에선 최소 비용으로 대량 생산을 해야 한다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밀집사육 방식을 고수해왔다.

전문가들은 ‘살충제 달걀’ 사태를 계기로 닭 사육 방식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재홍 교수는 “이번 기회에 정부에서 지나치게 밀집 사육되는 부분을 조절해야 한다”며 “총체적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김현지 정책팀장은 “이번 사건은 달걀이라는 하나의 식품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동물의 건강과 인간의 건강이 연결돼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참에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진 김양진 기자, 창원 전주/최상원 박임근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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