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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80> 생선 다섯 근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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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성(姓)은 이(李)고 이름은 이(耳)다. 자는 백양(伯陽) 또는 담(聃)으로 칭했다. 그는 도덕경에 이렇게 적었다. “가장 나은 다스림이란 군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다음은 존경받는 것이며, 그 아래는 백성이 두려워하는 군주며, 가장 못한 것은 경멸받는 자다(太上下知有之 其次親而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

기업 경영 정도(正道)는 무엇일까. 이같이 물 흐르듯 할 수 있을까. 매일 새 기술과 제품으로 경쟁하는 혁신 기업에도 이런 리더십이 가능할까.

1984년 장루이민은 한 공장에 부임한다. 경영 상태는 엉망이다. 빚은 147만위안이나 되고, 1년 새 공장장 3명이 사임한 터였다. 800명 직원이 몇 달째 밀린 월급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51명은 전출을 신청해 놓았다. 겨우 돈을 빌려서 밀린 임금을 해결할 때쯤 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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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루이민은 다시 돈을 빌려서 생선 다섯근씩을 설 선물로 직원들에게 나눠 준다. 이즈음 오래된 트럭이 말썽을 부린다. 출퇴근 때 직원들을 실어 날랐는데 어린애라도 안고 타려면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당장 자재가 급했지만 다시 돈을 빌려서 통근버스를 구입한다. 이즈음 직원들은 공장이 살아남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본 듯 했다. 장루이민은 직원과 몇 가지 약속을 한다. 우선 매달 월급을 꼭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 대신 작업 규칙을 지키자고 했다. 작업장에서 소변 보는 것도, 사소한 것이라도 회사 물건을 가져가는 것을 금지했다.

어느덧 칭다오 직원 200명짜리 냉장고 공장은 8만명 하이얼이 된다.

누군가 그에게 리더십이란 어떤 것인지 물었다. 그는 다섯가지를 말한다. 첫 번째는 신념이다. 1991년 하이얼산업단지를 건설할 때였다. 공사에 15억달러가 필요했다. 보유 자금은 8000만달러밖에 없었다. 공사가 시작되자마자 자금은 바닥난다.

불만과 불안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완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건설회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1992년 설 전날 아침에 장루이민은 공사장을 찾는다. 그리고 인부들과 함께 만둣국을 먹으면서 자신의 계획을 나눈다. 1993년 경제 붐이 시작되고, 하이얼은 상하이증시에 상장된다. 경쟁 기업은 그제야 공장을 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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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작은 기업 만들기다. 루이민은 자주 잭 웰치의 위대함은 제너럴일렉트릭(GE)을 가장 큰 기업이자 가장 작은 기업으로 만든 것에 있다고 말했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발성과 성취 동기를 갖도록 했다는 말이다. 장루이민은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춘다.

첫 번째로 가치 찾기와 자기 실현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자. 그래서 하이얼은 상하 조직보다 프로젝트 팀을 중시했다. 상사보다는 시장과 고객에게 응답하는 조직으로 만들자. 두 번째는 성과 보상이다. 많은 사람이 하이얼 연봉 수준이 경쟁 기업보다 낮다고 했다. 어쩌면 당연하다. 이곳에서 연봉은 직급이나 보직과 무관했다. 프로젝트 결과로 연봉이 정해졌다.

세 번째는 차이 만들기다. 장루이민의 차이 만들기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제품, 둘째는 인재다. '스리 시즌 제품 혁신'이라 이름 붙인 패스트사이클 제품 향상은 기본이다. 동시에 컴프레서 없는 냉장기, 물과 세제가 필요 없는 세탁기 같은 혁신 제품도 추구했다.

2016년 1월 하이얼은 GE 가전사업부를 인수한다. 작업장을 깨끗이 관리하는 것조차 힘겨워 하던 기업이 30년 만에 이룬 성과로,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다.

많은 경영 구루가 그에게 리더십을 물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회사 초창기에 출장은 의례히 갑작스럽기 마련이었다. 좌석을 잡지 못할 때가 흔했다. 그럴 때면 2위안짜리 낚시용 간이의자를 빌려서 통로에 앉아 먼 길을 가고는 했다.

그동안 많은 일을 시작할 때면 직원들은 주저했다. 공공연히 반기를 든 적도 있었다. 어떻게든 그것을 실천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분명해질 즈음 직원은 하나둘 동참하기 시작했다.

한 경영자와 인터뷰하면서 장루이민은 노자를 인용했다. “…태상 하지유지(太上下知有之), 즉 군자란 그가 있는 듯 없는 듯 행해야 하며….” 서구적 리더십에 친숙했을 편집자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장루이민은 하이얼 직원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최고경영자(CEO)나 보스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진정 위대한 기업은 직원 자신이 시장과 고객을 책임 맡은 것처럼 행동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기업 경영의 순리 역시 노자의 무위(無爲)와 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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