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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단독]“골목 누비는 시위대, 시끄러워 공부 못해요” 초등생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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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 시위 몸살… 청운효자동 주민 피해신고 살펴보니

동아일보

7월 말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택가 골목에서 “이석기(전 통합진보당 의원) 석방하라” 등을 외치며 시위대 수십 명이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주민 제공


“차라리 ‘전용 시위장’을 만들어 주세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를 찾은 송모 씨(38)가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 소음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던 송 씨는 이날 회사 업무까지 잠시 중단하고 주민센터에 왔다. 이날이 집회시위 피해신고서 접수 마감일이기 때문이다.

송 씨의 집은 청와대에서 200m가량 떨어져 있다. 15년째 조용한 주택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변했다. 그는 “시위대가 폭 4, 5m 골목을 행진하며 ‘이석기 석방’을 외치고 담벼락에 술병을 버리거나 노상방뇨까지 한다”며 “전용 시위장을 설치하는 법안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후 청와대 근처 집회시위가 급증하면서 주민들이 “살 수가 없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급기야 주민들은 ‘청운효자동 집회시위 금지 주민대책위원회(주민대책위)’를 만들어 8일부터 14일까지 피해신고서를 접수했다. 고사리손으로 신고서를 작성한 초등학생부터 백발이 성성한 80대 노인까지 다양했다.

이들이 고발한 피해 실태는 겉보기보다 심각했다. 본보는 주민대책위와 함께 14일 낮 12시까지 접수된 피해신고서 85건을 분석했다. 가장 많은 피해는 소음(76건·중복 응답 가능)이었다. 주민 대부분은 밤낮 가리지 않는 확성기와 마이크 소리에 괴로워했다. 차도에 설치된 확성기 옆을 지나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고막 손상을 입었다”는 주민도 있었다. 대중교통 이용 등 ‘통행 불편’을 느끼는 주민도 절반(42건)에 달했다. 피해 신고서를 낸 한 주민은 “시위대가 집 근처 주차장 공간을 몽땅 차지해 내 승용차는 도로에 불법 주차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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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청운초교 학생이 주민대책위에 제출한 집회시위 피해신고서에 “시끄러워 공부를 할 수가 없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이어 영업 방해(27건)와 정서 장애(23건), 수업권 방해(21건)의 순이었다. 근처에서 13년째 한식당을 운영하는 김모 씨(50·여)는 “차량 이동이 막히면서 매출이 50%가량 떨어졌다”며 “직원 2명을 최근 그만두게 했지만 지금 같아선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쓰레기와 노상방뇨에 따른 악취, 장애인의 통행 불편 사례도 10건 이상이었다. 청운초교 A 군(10)은 피해 신고서에 “시끄러워서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이상한 물건(버려진 천막, 흉상 등) 때문에 보기 싫다”고 적었다.

주민들은 “오죽하면 피해신고서까지 쓰겠느냐”며 하소연했다. 2014년 세월호 집회와 지난해와 올해 초 촛불집회 때도 불편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응원하고 동참했다. 주민 유모 씨(53·여)는 “세월호 집회 때는 주민들이 나서서 천막까지 함께 설치해줬다”며 속상해했다. 유 씨는 “아들이 고3 수험생인데 집회 소음 탓에 수능 모의고사를 망쳤다고 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14일 오전에도 대형버스를 타고 온 집회 참가자 수십 명이 주민센터 앞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한 집회 참가자가 피해신고서를 접수하는 주민을 향해 “오늘도 시끄럽게 하러 왔어요”라며 비꼬듯 말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접수한 피해신고서를 청와대와 국회, 경찰청 등에 제출하기로 했다. 또 17일 오전 10시 반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근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회 반대를 위한 집회’를 벌일 예정이다. 청운효자동 통장협의회 정모 회장은 “문제를 제기해도 당국은 집회 시위의 자유를 금지할 수 없다고만 한다”며 “집회총량제 같은 대안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예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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