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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황대권의 흙과 문명]소농구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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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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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가 입만 열면 자연으로 돌아가자며 생태근본주의자들에게나 먹힐 얘기를 자주 하니 혹시 원시사회로의 복귀를 꿈꾸는 것이 아니냐며 의심을 하곤 한다. 내게 그런 성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나는 동시대 사람들과 똑같이 첨단 기기를 사용하여 소통하고 내 일상을 기록한다. 원시로의 복귀는 지난 일만년 간의 농업혁명을 통해 환경이 다 파괴되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수렵채취의 생활방식은 자연이 풍부하게 살아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한 생태학자는 인간이 그러한 삶을 영위하자면 지구에 인간의 개체수가 5억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쓸데없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5억명과 75억명 사이는 무슨 인위적인 조작을 통해 좁힐 수 있는 격차가 아니다. 그런데 숫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재미있게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당시의 세계 인구가 대략 5억명쯤 된다고 한다. ‘신대륙 발견’ 이후 세계는 자본주의 발흥에 이은 제국주의 세계지배, 과학혁명에 의한 급격한 생산력 발전,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인구폭발을 겪어왔고 우리는 아직도 그 자장 안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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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00년 사이에 인간은 하나의 생물종으로서 ‘우주’에 자랑할 만한 업적을 만들어냈지만 그 대가로 생태적 삶으로의 복귀가 거의 불가능한 환경을 갖게 되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는 두 개의 선택 가운데 하나를 취할 수 있다. 만약 ‘생태적 복귀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되면 그동안 수없이 발표된 SF영화처럼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진출해야 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그 가능성이 남아있다면 ‘생태적 전환’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이는 마치 오래된 낡은 집을 두고 “새집을 마련할 것인지, 아니면 리모델링하여 그대로 쓸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과 같다. 재활용주의자인 나는 물론 후자를 선호한다.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산림 외의 지역은 거의 노는 땅이 없을 정도로 경작지로 가득하다. 그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자니 그럴 만도 하다. 흔히들 지구환경 파괴의 원인을 산업화로 보지만 실은 농업혁명 이래로 ‘농업’이 주범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물론 여기서의 농업은 ‘산업화된 농업’이다. 해마다 전 세계 농경지에 300만t 이상의 농약이 살포되고 있는데, 이는 농약과 물을 많이 먹는 유전자변형작물(GMO)의 증가와도 관련이 깊다. 농약 한 모금 먹고 바로 죽는 것과 그 농약으로 키운 농작물을 먹고 서서히 죽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런 간접살상행위와 자연파괴는 전혀 농부의 책임이 아니다. 세계 10대 농업국가의 농업인구 비율을 평균하면 10% 정도 된다. 말하자면 1명의 농부가 9명을 먹여 살리는 꼴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인구대국이자 농업대국인 인도와 브라질 때문에 평균이 올라간 것이지 주요 선진국들은 채 3%를 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델국가인 영국의 농업인구는 1%에 지나지 않으며 대표적인 농업국가인 아르헨티나는 놀랍게도 0.5%밖에 되지 않는다. 그 작은 인구로 그 많은 경작지를 갈려면 기계와 농약에 기댈 수밖에 없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농업인구는 줄어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결국 기계와 농약 사용은 갈수록 늘어난다. 이 악순환을 끊지 않으면 지구는 언젠가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변할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내다보고 일찍이 세계 각지의 선구자들이 내놓은 해결책이 있다. 이름하여 ‘소농구원론’이다. 개인, 가족 또는 공동체가 운영하는 소농(小農)을 국가 정책의 중심에 놓는 것이다. 이 칼럼의 독자들은 아래에 늘어놓는 농업사상가들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인터넷 또는 책방에 가서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여보기를 바란다. 미국의 ‘웬델 베리’, 프랑스의 ‘피에르 라비’, 한국의 ‘천규석’, 일본의 ‘쓰노 유킨도’와 ‘가와구치 요시카즈’, 호주의 ‘빌 모리슨’, 러시아의 ‘아나스타시아’ 등이다. 모두 소농철학자이고 소농이 지구를 구원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분들이다. 이 가운데 마지막 둘은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호주의 빌 모리슨은 서구사회에서 대안적인 소규모 농업경영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퍼머컬처(permaculture)’의 주창자이다. 요즘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전환마을운동’의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가 퍼머컬처이다. 러시아의 아나스타시아는 실은 책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아나스타시아는 러시아의 타이가 산림에서 홀로 사는 여인으로, 자연 속에서 ‘투시능력’을 얻은 그녀의 예지에 의하면 미래는 ‘자연주의’가 대세가 될 것인데 인류를 이 새로운 세계로 안내할 살림단위가 러시아의 ‘다차(dacha)’라는 ‘가족소농’이라는 것이다.

사실은 이 모든 소농구원론의 기초를 놓은 이가 있으니 바로 인도의 간디다. 간디는 60만개의 자급자족 마을공동체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독립국가를 꿈꾸었으나 국가사회주의자인 네루가 초대 총리가 됨으로써 인도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중국과 달리 엄격한 산아제한을 하지 않는 인도는 앞으로 7년 뒤에 중국의 인구를 추월할 것이라 한다. 인구의 절반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 산업자본주의 시장의 지도국가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인도에서 소농경제가 자기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면 인도는 ‘새로운 농업혁명’의 중심 국가가 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소농과 마을의 부활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과연 국가 중심의 자본주의 경쟁체제 속에서 그 내용을 어떻게 살려갈 것인지는 앞으로 치열한 논의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것이다.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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