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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청춘직설]맹목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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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의 여름, 피서를 한다고 바다로 산으로 다녔지만 오가는 길에 이 여름이 얼마나 지독한지 절감했을 뿐 전혀 더위를 피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정작 잠깐 더위를 잊었던 때는 드라마 <비밀의 숲>을 몰아보았던 지난 며칠이 유일했던 듯하다.

경향신문

내가 이 드라마에 열광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첫째, 리얼리티이다. <비밀의 숲>은 부정부패로 넘쳐나는 우리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손쉽게 ‘영웅’을 내세워 정의를 바로잡는, 사이다 같은 판타지를 제공하지 않는다. 불의와 정의가 뒤섞여있고, 범죄자와 의인이 하나이고 살인자가 피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드라마에서 서사는 뫼비우스 띠와 같은 기이한 곡면을 따라 롤러코스터를 탄다.

줄거리는 정계, 재계, 검경 가릴 것 없이 뇌물을 주고 로비했던 사업가가 살해되고 우여곡절 끝에 이 사건을 둘러싼 거대한 범죄의 고리를 파헤친다는 것이다. <비밀의 숲>의 성공은 진부할 수도 있는 이 모티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캐릭터 창조에 있다.

우선 주인공인 황시목 검사. 그는 어릴 적 뇌수술로 감정을 상실하고 오직 이성과 법에 충실한 알파고 같은 인간이다. 법리만을 탑재한 황시목 검사는 타인과의 소통에 서툴고 변변한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다. 공조수사나 사람을 믿지 않고 오직 사실과 증거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황시목 검사는 역설적으로 무감동, 무감정과 관계단절로 인해 인맥과 욕망으로 얽히고설킨 비밀의 숲의 무성한 가지들을 냉철하게 헤쳐나간다.

그리고 살인사건을 둘러싼 ‘비밀의 숲’에는 욕망과 비리로 얽힌 다양한 인물들이 포진해있다. 복수에 눈이 먼 영 검사, 탐욕과 권력에 눈이 먼 재벌 회장, 성접대와 뇌물수수로 오염된 경찰서장과 스폰서 검사, 업계의 비리로 어린 자식을 잃은 수사과장, 그리고 가족에 발목 잡히고 정의감에 눈이 먼 과대망상의 검사장. 이들 인물은 선과 악, 불의와 정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거니와 고정된 자리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이들 인물은 사건 발생과 동시에 황시목과 더불어 혹은 더 신속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전개시킨다.

가령 열등감을 지닌 서동재 검사는 권력과 뇌물로 얼룩진 기회주의자로 등장하지만 이중스파이 역할로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자신의 비리 사실을 감추기 위해 증거물을 은폐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타인을 해치지는 못하는 아슬아슬한 인물로 등장한다. 범죄의 ‘빅피처’를 연출한 이창준 검사장은 정의감에 가득 찬 인물이지만, 한편 재벌회장인 장인과 아내로 인해 부정부패의 수호자가 된 아수라 백작 같은 인물이다. 즉 <비밀의 숲> 인물들은 모두 한마디로 ‘살아있네’라는 탄성을 자아나게 한다.

<비밀의 숲>이 끝까지 흥미진진할 수 있는 것은 각각의 인물이 모두 범인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범인일 수 있는 이유는 각각 어떤 욕망과 감정의 지점에서 ‘맹목적’이기 때문이다. 애국이든 사리사욕이든 사람들은 어떤 지점에서 눈이 멀거나 눈을 감는다. 작가는 이 맹목의 숲에 인공지능 같은 황시목 검사를 가만히 풀어놓는다. 그는 ‘욕망이나 감정’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이 맹목의 숲에서 유일하게 ‘눈을 부릅뜨고’ 진실을 보고, 진실을 말한다.

셋째, <비밀의 숲>은 영웅과 독재를 경계한다. 매스컴에서 흘러나오는 숱한 부정부패와 문제들을 접하면서 나는 때론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내가 통치자라면 저걸 단칼에 싹!’이라는. 가령 사교육을 없애거나 토지 사유를 금지시키는. 그런 상상 끝에 어떤 독재자나 파시스트가 딸려오는 것을 보고 흠칫할 때가 있다. <비밀의 숲>은 이런 환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가령 이창준 검사는 범죄자이기도 하지만, 한편 권력자들의 비리증거를 확보해서 황시목 검사에게 넘겨주고 자결한 의인이자 내부고발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황시목 검사는 그를 ‘괴물’이라 칭한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 있고, 큰 목숨과 작은 목숨이 따로 있다고 믿으며 타인을 단죄한 파시스트.

사실 황시목 검사라는 캐릭터야말로 지독한 판타지일 수 있다. 감정이 없는, 타인과 무관한 인간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판타지야말로 우리 현실의 무의식적 소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국정농단뿐 아니라 세월호 등의 거대한 사건에서 우리는 부정으로 촘촘히 연결된 그물망을 본다. 그리고 그 숱한 매듭에는 저와 같은 각각의 맹목이 들어차 있다. 받고 주었다는 이유로, 식구라는 이유로 누구 하나 이 사슬에서 발을 빼어 진실을 외치지 못한다. 이 시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와 같은 알파고 검사가 절실한 이유이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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