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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한기호의 다독다독]신간을 발견할 수 없는 대형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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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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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형서점을 들르는 분들 중에서 원하는 책을 제대로 찾아볼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책을 정말로 좋아하는 분들마저도 전에는 한나절씩 돌아보면서 보고 싶은 책을 고르는 가운데 많은 상상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것이 별로 없어 잠깐만 둘러보고 바로 나오곤 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제 대형서점에서는 신간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경향신문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대형서점에서 책을 진열하는 매대를 출판사에 판매하기 때문입니다. 출판사가 신간을 진열하려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합하여 광고비를 제대로 들여서 매대를 사야만 책을 일정한 기간 동안 진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과거에도 없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자리’만 팔았으나 지금은 ‘구석 자리’까지 팔아서 신간을 진열할 수 있는 자리가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러니 독자가 서점에 들러서 다양한 신간들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책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있는 것입니다.

구간 스테디셀러 역시 진열할 공간이 없다는 핑계로 서점에서 대거 사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용 중에서 좋은 책을 꾸준히 펴내는 출판사들의 책들은 대형서점에서는 찾아보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림책은 서점에서 5분 동안 넘겨보고 구입해서 아이들과 오랫동안 보는 책입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그림책을 믿고 구입할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상을 해마다 수상하는 한국의 그림책이 이런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성 있는 중형서점들에는 이런 책들이 여전히 진열돼 있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 대형서점의 매대 판매가 출판시장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판매한 매대에는 어떤 책들이 진열될까요? 주로 베스트셀러를 겨냥한 책들입니다. 매대를 사지 않으면 진열이 되지 않으니 출판사들이 대형서점의 ‘갑질’을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고비가 오르다 보니 이제 매출대비 광고비가 많게는 50%를, 심지어는 초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출판 관계자들의 일부는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지만 대부분은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습니다.

지금은 매대 구입과 온라인서점 광고를 통해 10만부를 팔아도 이익이 나지 않습니다. 한 해에 10만부를 넘는 책이 과연 몇 종이나 될까요? 그러니 이런 구조는 처음부터 망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니 우리 출판은 급격하게 몰락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형서점의 좋은 자리는 사겠다는 출판사가 많아 추첨을 할 정도입니다.

과거에 서점에 들러서 직원들로부터 좋은 책을 추천받아서 행복한 결과를 가진 경험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절대로 기대하지 마십시오. 지금 대형서점 MD들은 좋은 책을 찾아 읽는 것이 아니라 매대를 사줄 출판사를 찾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출판사 마케터의 메일에는 대형서점 관계자들의 광고 독촉 메일이 날마다 쌓이고 있습니다. 어떤 이벤트에 참여하라, 어떤 자리에 광고하라! 심지어 하루에 한 부만 팔려도 잘 팔리는 책이라며 광고하라고 독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익을 내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도 서점 관계자들의 요구가 더욱 집요해지고 있습니다. 온라인서점의 화면에도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 거의 노출이 되지 않는 형편인데도 비용 부담이 걱정인 출판사 관계자들이 서점에 가는 것을 꺼리고 있을 정도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서점 관계자들이 추천하는 책들은 매대를 산 출판사의 저질 책이기 십상입니다.

아, 물론 매대를 사서 성공한 출판사가 없지 않습니다. 시장에서 꾸준히 팔리는 다른 출판사가 펴낸 책들을 적당히 가공해서 펴낸 책들입니다. 이 책들은 생산비가 적게 드니 마케팅 비용을 남보다 더 투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례가 한둘 등장하니 이를 따르는 출판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덕분에 대형서점은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이런 서점들을 독자가 찾을까요? 찾지 않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형서점들은 매장 안에 문구, 음반, 음료, 음식을 판매하는 공간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제 책은 다른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미끼상품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한 대형서점은 본격적으로 책 중심의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를 수 있는 복합문화 상가로 바꿔가고 있습니다. 책을 매개로 하면 상가가 잘 분양되는 모양입니다. 급기야 책이 지역의 부동산을 띄우는 풍선으로 전락해가고 있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이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다 보니 출판경기는 최악입니다. 일간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소개된 책마저도 초판 비용을 뽑기 어려워진 것은 오래됐습니다. 모두가 팔리는 책이나 저자를 찾다 보니 유망한 신인저자의 책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덕분에 어느 분야나 팔리는 저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준입니다. 이제 출판인들의 가슴에는 체념과 비관이 지나쳐서 냉소만 넘쳐나고 있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상황이 너무 심각해 되돌리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출판단체들은 이제야 실태조사를 통해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지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만으로 상황이 개선될까요? 이 같은 대형서점의 ‘갑질’을 막아줄 수 있는 분들은 독자뿐입니다. 여러분의 열렬한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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