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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속담말ㅆ·미]가난이 싸움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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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아파트에서는 택배기사의 엘리베이터 이용을 금한다는 문구를 입구에 부착했습니다.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분개했지요. 무거운 택배물 들고 20층까지 걸어서 올라가라는 거냐고, 그깟 전기요금이 사람보다 더 중요하냐며. 또 어느 아파트에서는 경비실 에어컨에 비닐을 씌워버렸습니다. 자신들도 아껴 트는데 경비원 주제에 많이 틀까 봐, 관리비 올라갈까 봐 부아가 나고 식겁했겠지요. ‘가난이 싸움 붙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가난하면 작은 이익이나 사소한 일에도 서로 다투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가난하면 못난 소인배가 된다는 빈자소인(貧者小人)이란 말도 있습니다. 흔히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하죠. 동물의 세계에선 먹이가 부족해지면 모자란 먹이를 두고 너 죽고 나 살자 죽일 듯이 싸워댑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정말 인간다운 이는 드물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이 받을 고통보다 내 것부터 챙기기 급급한 ‘동물의 왕국’ 그대로 말입니다.

사실 빈자소인이 아니라 소인빈자(小人貧者)일 거라 생각합니다. 가난해서 못난 사람이 되는 게 아님은 곳간 넉넉한 이조차 빗장 단단히 걸어 잠그고 나보다 약한 이를 착취하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내 것부터 챙기려는 동물적 본능이 인간의 마음보다 낫다고 무의식에서 충동질할 테니까요. 소인은 동물이고 대인은 인간입니다. 그것은 지위고하 재산유무와 무관할 것입니다.

자신이 시킨 택배는 소중하고 자신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보내주고 지켜줄 이는 중요치 않습니다. 아니, 아깝습니다. 인간성을 아껴야 할 만큼 우리의 마음은 이토록 가난한 걸까요?

택배기사님을 위해 문고리에 음료수 걸어두는 분이 있고, 아파트 동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경비실에 에어컨 달아드리기도 합니다. 인간성을 포기하면 야수입니다. 그렇게나 우리는 굶주렸을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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