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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소녀상 만든 부부 작가 "전쟁 뒤엔 늘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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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인 14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기림일, 인권과 평화로 소녀를 기억하다' 전시회에서 시민들이 500개의 소녀상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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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인 14일 서울 청계광장에는 500개의 '미니 소녀상'이 설치됐다. 남·북한 정부에 신고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수만큼이다. 이날 청계광장에서는 오전부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다양한 캠페인이 진행됐다. 오후에는 가수가 꿈이던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89) 할머니의 노래 공연도 펼쳐진다.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이 된 '평화의 소녀상'은 조각가 김서경(54)·김운성(53) 작가 부부의 작품이다. 6년 전 우연히 수요집회를 보게 돼 두 사람은 역사의 아픔을 '예술'을 통해 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수요집회 1000회차를 맞은 2011년 12월 14일 소녀상이 처음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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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을 처음 제작한 김서경·김운성 부부. [사진 김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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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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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녀상이 원형이 돼 전국 곳곳에는 소녀상이 80여 개 설치돼 있다. 그동안 일본 극우인사의 '말뚝 테러', 일부 단체들의 훼손 시도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해 12월에는 부산 동구 일본 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이 철거됐다가 이틀 뒤 재설치되는 일도 있었다. 이후 이 소녀상은 시민들이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다. 김운성 작가는 "소녀상이 겪은 고초를 보며 '왜 저사람들은 소녀상을 불편해 할까'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곤 했다. 그래도 그때마다 소녀상을 지키려는 시민들 모습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용산역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도 두 사람이 제작했다. 노동자상을 제작하기 전 부부는 강제징용의 실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 작년과 재작년 일본 홋카이도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20년 동안 강제징용 노동자 유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는 도노히라 요시히코 스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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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막식'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인 김한수(99)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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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묻혀 있는 평지를 보다 보면 움푹 들어간 데가 있대요. 당시 노동자들이 죽으면 땅에 아무렇게나 묻었는데 살이 썩으니까 그쪽 땅만 푹 꺼지는 거예요. 이 땅을 파면 백이면 백 유해가 발견된대요. 그 얘기를 스님한테 들으며 이곳에서 어떠한 희망도 없이 살아야 했던 조상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퍽 막히더라고요. 얼마 전 영화 '군함도'를 보는데도 스토리보다는 이들의 열악했을 현실이 더 눈에 들어와 영화에 집중을 못했어요." 김 작가가 말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역시 설치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일제가 강제징용자들을 각지로 보내기 전 집결시킨 '전초기지'가 용산이었다. 그런 의미를 담아 애초 올해 삼일절 용산역 광장에서 제막식을 하려고 했으나 당시 정부에선 "국가 부지인데다 시민들 통행에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동상 건립을 불허했다. 지금 세워진 노동자상 역시 '완전 설치'가 아닌 '임시 설치'라 언제든 철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8월 일본 단바망간기념관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웠어요. 한국은 일본보다도 1년 가량 뒤처진 거죠. 작업을 하다보면 정부에 참 실망감을 느낄 때가 많아요. 소녀상도 시민들의 성금으로 제작했고 시민들이 지켜요. 강제징용 노동자 유해 갖고오는 것도 원래 정부가 한다고 했다가 취소돼 시민들이 했거든요. 이전 정부야 정상이 아니었으니 그렇다쳐도 문재인 정부는 정말 정부의 역할을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부부의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위안부 기림일을 앞두고는 국민 공모를 통해 위안부 기념 주화를 만들었다. 버스회사 동아운수와 합작해 간선버스 151번 5대에 소녀상을 설치하기도 했다. 김 작가는 "151번 버스가 일본대사관 인근인 조계사를 지날 때는 영화 '귀향'에 수록된 노래들이 버스에서 흘러나오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소녀상 버스'는 이날부터 10월 추석 연휴 때까지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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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서울 시내버스 151번에 실려 있는 평화의 소녀상. 151번 버스를 운영하는 동아운수 측은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세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인 14일부터 9월 30일까지 151번 버스 5대에 소녀상을 설치해 운행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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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부부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평화'다. 부부 작가는 한국이 전쟁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였다는 걸 기억하자는 의미로 제주 강정 평화센터에 '베트남 피에타'상을 건립했다. 향후에는 베트남 현지에도 피에타상을 세우는 게 이들의 목표다. 김 작가는 "전쟁의 역사를 보면 승리의 이면엔 늘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광복절을 맞아 왜 전쟁이 없어야 하는지, 왜 평화가 중요한지 다들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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