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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역대 대통령 어떤 영화 봤나…팝콘 대신 ‘통치철학’ 들고 극장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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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인권, 박근혜 애국 등 강조

보수와 진보정권서 본 영화 화두 달라

최고 권력자가 현대사회의 가장 대중적인 매체인 영화를, 그것도 공개적으로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단순한 문화향유? 킬링 타임? 혹시 향후 정국에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한 의도적 행위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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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과 영화를 관람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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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아직 광주의 진실이 다 규명되지 못했고 이것은 우리에게 남은 과제”라며 “광주 민주화 운동이 늘 광주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당시의 진실이 국민 속으로 확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용산의 한 영화관에서 5ㆍ18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나서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씨를 만난 문 대통령은 “아직도 광주의 진실을 마주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고 영화로 보는 것도 힘든 일”이라고도 했다.

역대 대통령 또한 영화 관람을 통해 자신의 통치철학을 우회적으로 전달하곤 했다. 대통령이 본 상당수 영화에 정치ㆍ사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보수 정부는 성장ㆍ리더십을, 진보 정부는 인권을 강조하는 영화를 주로 택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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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대선 기간 중 문재인 대통령은 영화 '광해'를 관람한 뒤 눈물을 흘렸다. [중앙포토]


◇문재인 ‘인권+노무현’=문 대통령이 13일 관람한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전 세계에 알렸던 독일 기자의 실화를 다뤘다. 실제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5ㆍ18 민주화 운동을 재평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5.18 기념식에서는 “5ㆍ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공약을 지켜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월엔 사법 피해자의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재심’을 본 뒤 “약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다졌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의 선택 포인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을 모티브로 한 '변호인' 관람이 대표적이다. 2012년 대선 두 달 여 전에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울음을 터뜨린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영화)마지막 장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저절로 떠올랐던 모양”이라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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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4년 서울 용산구 한 극장에서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일환으로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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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애국+창조경제'=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화 관람은 본인의 통치철학인 ‘문화융성’을 전달하는 일종의 매개였다. 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2013년 1월)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을 관람했다.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한 영화가 아닌, 다소 의외의 영화였다. “콘텐트가 갖는 문화적 함의보다 산업적 가치를 중시한다는 뜻”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듬해 1월에는 ‘넛잡:땅콩도둑들’을 관람했다. 국내 자본과 기술력이 투입된 이 애니메이션은 북미에선 박스오피스 2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지만 한국에선 최종관객수 47만명에 그친 영화다. 박 대통령은 이를 두고 “넛잡의 한국 흥행부진이 국내 배급시스템의 문제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1월29일)은 박근혜 정부가 지정한 ‘문화가 있는 날(매달 마지막주 수요일)’의 첫 시행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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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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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박 전 대통령은 보수적 시각을 영화관람에 투영했다. ‘명량' '국제시장'(2014년) ‘인천상륙작전'(2016년) 등이다. 특히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시절 이뤄진 광부와 간호사의 독일 파견을 소재로 한 ‘국제시장’을 관람하고는 “(그때는)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경례를 하곤 했다"는 소회를 전했다.

'국뽕' 논란에 휩싸였던 '국제시장'은 당시 정치인 문재인도 봤다. 영화를 본 뒤 자신의 트위터에서 “(경례 장면은) 영화가 사용한 에피소드고 영화는 영화일 뿐, 애국은 보수 진보를 초월하는 가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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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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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성공신화', 노무현의 '다양성'=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2008년 1월) 2004 아테네올림픽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실화를 다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했다. 그는 “영화가 성공하고 (비인기 종목에 대한)국민적 인식을 제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2009년엔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290만 관객을 동원한 ‘워낭소리’를 봤다. 관람뒤 “자녀 9명을 농사지어 공부시키고 키운 게 우리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겠는가”라며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 했던 것이 우리의 저력이 됐고 외국인도 이에 놀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역경 극복과 성공 신화를 간접적으로 전달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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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저예산 독립영화 ` 워낭소리 ` 관람에 앞서 제작자인 이충렬(왼쪽)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동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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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영화 `밀양` 제작진을 청와대로 초청해 함께 점심을 들며 이야기를 나누다 이창동 감독(왼쪽)과 웃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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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화 사랑도 각별했다. 어떤 성향을 띤다고 규정을 하기 힘들만큼 양과 질에서 풍성했다. 2006년 금기를 깨면서도 권력을 조롱하는 영화 ‘왕의 남자’를 필두로, ‘맨발의 기봉이’ ‘괴물’ 등을 골랐다면 이듬해 2007년에는 ‘길’ ‘밀양’ ‘화려한 휴가’ 등을 택했다. 노 전 대통령은 ‘화려한 휴가’를 본 뒤 눈이 붉어진 채 “가슴이 꽉 막혀서 영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고도 했다. ‘왕의 남자’를 본 뒤에는 “이야기를 엮어가는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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