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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차 한잔 나누며] “좋은 판결도 화해만 못해… 집주인·세입자 합의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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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 권광중 위원장

세계일보

최근 대한법률구조공단 산하 서울·부산·수원 등 6개 지부에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가 생겼다. 일반 국민에겐 아직 낯선 이 기구는 임대차계약 등을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에 다툼이 생겼을 때 조정해주는 곳이다. 법원 재판까지 가면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신속히 분쟁을 해결하라는 취지다.

공단 서울중앙지부 조정위 권광중(75) 위원장을 만나 주택임대차분쟁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권 위원장은 30년 가까이 판사로 일했고 지금은 법무법인 ‘광장’에 고문변호사로 있는 원로 법조인이다. 아무래도 집주인이 ‘갑’, 세입자가 ‘을’의 지위인 것이 현실인데 갈등 조정에 임하는 그의 기본 철학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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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언(法諺) 중에 ‘아무리 좋은 판결도 화해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화해를 조정으로 바꾸면 ‘아무리 좋은 판결도 조정보다 못하다’가 되겠죠. 이 원칙에 따라 당사자를 설득하려 합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엄동설한에 오갈 데 없는 노인에게 퇴거를 명한 법원 판결을 ‘위헌’으로 결정한 적 있습니다. 사실 법대로만 하면 잘못이 없는 판결이었겠죠. 조정은 이렇게 법대로만 선언하는 것보다 당사자 간 합의가 우선입니다. 그러니 사안에 따라선 조정 성립이 판결보다 결과가 더 나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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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보는 조정의 강점은 또 있다. 일단 남한테 소송을 당해 법원을 드나드는 것보다 조정 신청이 제기돼 조정위를 찾을 때 거부감이 훨씬 작다. 비용도 저렴한 편이다. 권 위원장은 “1억원짜리 임대차분쟁의 경우 조정위 이용에 드는 수수료가 1만원인 반면 같은 사안을 법원에 들고 가면 수수료 4만5500원에 적잖은 서류 송달료까지 내야 한다”며 “조정위가 생긴 지 얼마 안 돼 사건 적체가 없어 모든 신청이 신속히 처리되는 것도 장점”이라고 귀띔했다.

조정위는 권 위원장 같은 변호사는 물론 공인회계사, 감정평가사, 법무사, 세무사, 공인중개사 등 다양한 직역의 전문가 13명이 포진해 있다. 위원들은 조정 신청을 접수하면 당사자들을 불러 얘기를 듣고 관련 서류도 검토한 뒤 60일 안에 결론을 내린다. 조정안을 받아든 당사자들이 동의만 하면 분쟁은 그날로 끝이다. 물론 조정까지 갈 필요 없이 당사자들끼리 원만히 합의하는 게 최선이다. 권 위원장에게 분쟁 소지 없게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노하우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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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체결 전에 임차할 주택의 등기부상 권리 상황을 꼭 확인하고 임차할 주택의 현상도 꼼꼼히 살펴 혹시 수리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누가 수리할 것인지, 계약 종료 후의 원상회복 의무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미리 정해 반드시 문서로 정확히 기재해야 합니다. 계약 후 약정 내용을 변경하는 경우도 변경 내용을 꼭 서면으로 작성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권 위원장은 판사 시절 서울지법 민사수석부장, 광주지법원장, 사법연수원장 등 법원 고위직을 거쳤다. 어찌 보면 약간 ‘급’이 맞지 않을 수도 있는 조정위원장 자리를 선뜻 수락한 이유는 뭘까.

“별로 빛이 나지 않는 자리이니 제게 맡겨졌겠지요.(웃음) 저는 법원을 퇴직하고 2002년부터 법원 민사조정위원으로 일했습니다. 2013년부터는 서울법원조정센터 상근조정위원을 맡고 있고요. 어느덧 민사조정위원이 부전공이 된 셈입니다. 이제는 시간 여유도 있고 마침 건강도 허락해 공익활동 일환으로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곧 ‘인생 100세 시대’가 도래할 것이고 인생2모작이니 3모작이니 야단인데 저 같은 시니어 변호사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인생2모작이 바로 공익활동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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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권광중 위원장은 “조정으로 분쟁을 해결하면 시간과 비용이 법원 재판보다 훨씬 적게 든다”고 강조했다.이제원 기자


그는 법조인을 길러내는 사법연수원에서 공직생활을 마감한 점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끝으로 후배 법조인과 법학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는지 물었다.

“의사가 ‘명의’로 인정받으려면 정확한 진단을 거쳐 그에 따른 적정한 처방, 수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조인도 의사와 다를 게 없어요. 사회 변화와 발전에 따라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는 법의 영역을 추적해 그에 맞는 전문지식을 함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앞으로 인공지능(AI)이 법조계에 도입된다면 암기를 해야 할 일은 많이 줄어들겠죠.(웃음)”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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