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증시에서 북한과 관련한 지정학적 위험은 일종의 상수다. 평시엔 물밑에 가라앉아 있다가도 느닷없이 증폭돼 시장을 뒤흔들곤 했다. 코스피가 2006년 10월 9일 북한 1차 핵실험 때 2.41%, 2011년 12월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에 3.43% 각각 급락한 게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대부분 지정학적 악재는 금방 소멸하고 증시는 정상을 되찾았다. 2015년 8월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 때 1,800까지 곤두박질쳤던 코스피가 불과 2개월 여 만에 2,000선을 넘어선 사례도 있다. 그만큼 증시의 우려나 분석이 실제보다 과장됐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이번에도 코스피 하락을 초래한 외국인 매도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정학적 위험에 따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외국인은 그동안 8개월 연속 순매수를 이어 오다가 최근 3주간 2조7,000억원을 매도했다. 이 중 80% 이상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IT주에 집중됐다. 문제는 외국인들이 삼성전자가 신고점을 기록한 지난 7월부터 이미 매도세를 나타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북한 위기로 코스피가 하락했다는 최근 분석도 실제론 대형 IT주에 대한 외국인의 차익실현 흐름이 작용한 ‘착시’일 수 있다고 본다.
증시에서 루머와 억측도 현실적 재료임은 물론이다. 다만 문제는 억측이 억측을 낳고, 그게 투기와 얽혀 증폭되다가 진짜 위기로 발전하는 상황이다. 시장의 역사에서 그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정부가 최근 긴장과 관련해 시장 동향을 면밀히 살피기로 한 것도 만에 하나 그런 파국을 막기 위한 예방조치인 셈이다. 일부 외국 언론은 우리 국민이 반복되는 지정학적 위기에 둔감해져 ‘위태로운 평화’에 너무 익숙해졌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더 큰 위험은 지나친 경거망동으로 ‘자기실현적 위기’를 자초하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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