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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보장 확대한 日건보 파산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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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보험 재원 논쟁 / '반면교사' 日의료복지 ◆

매일경제

일본의 40대 이상 직장인들은 이달부터 의료보험 부담이 더 늘었다. 40~64세가 내는 보험료 계산방식에 소득에 비례해 보험료를 더 내는 '총소득제'가 도입된 때문이다. 당장은 기존의 균등부담 방식과 총소득제가 반반씩 적용되지만 2020년에는 전부 총소득제에 의해 보험료를 내는 방식으로 바뀐다. 한마디로 소득이 전부 노출되는 '유리지갑' 직장인들이 불리하고, 소득이 높을수록 더 불리해지는 것이다.

또 75세 이상을 일컫는 '후기 고령자들'의 의료비를 지원하는 비용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대기업이 가입하는 건보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직장인 1명당 건강보험 부담은 올해 49만엔(약 490만원)이다. 10년 새 월급은 제자리인데 건보료 부담은 10만엔가량이 늘었다. 저축을 줄이고 또 소비를 줄이는 악순환에 빠지는 데 건보료가 중대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일본의 건강보험체계 변화 과정은 재원 마련에 대한 고민 없이 시작된 의료복지가 가져온 참사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일본 정부는 고령화와 함께 보험료 부담이 커질 때마다 땜질하듯이 직장인, 특히 고소득 직장인들의 부담을 집중적으로 늘려왔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부담 증가와 이에 따른 재원조달 계획이 마련되지 않은 때문이다. 결국 가장 탄탄했던 대기업 가입의 건보조합이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내몰리면서 협회건보, 국민건보까지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연구원은 "수익자부담 등을 확대하고는 있지만 고령자 의료비가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전체 보험체계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꼬집었다.

건강보험 체계 위기가 시작된 것은 2008년이다. 75세 이상을 뜻하는 '후기 고령자'들에게 본인 의료비에 대한 부담을 늘리자는 취지로 '후기 고령자 의료보험' 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다. 이 과정에서 "현역 세대가 고령자를 위한 고통을 분담하자"며 전 국민이 후기 고령자 보험 지원금을 의무부담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이후 현재까지 후기 고령자 보험 지원금은 일본 의료보험 시스템 전체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늪이 돼버렸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14년 기준으로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 의료비는 전체 의료비(40조8000억엔)의 35%가 넘는 14조4000억엔이다. 이 중 40%에 달하는 6조엔을 전 국민이 나눠내는 보험료에서 부담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정부와 지자체는 일반 예산에서 6조8000억엔을 추가로 부담하고 있다.

후기 고령자 의료보험에 내는 비용이 늘면서 가장 재정이 건실했던 대기업들의 건보조합마저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 대기업 건보조합 연합회인 건강보험조합연합회(건보련)는 올해 전체 1400여 개 조합 중 70%에 달하는 1000여 개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적자 규모만 3000억엔이다. 건보련은 "후기 고령자를 위한 지원금이 전체 수입의 40% 수준까지 늘어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대로라면 2025년엔 조합원 의료비보다 후기 고령자 지원금이 더 많아질 것"이라며 "대기업 건보조합의 4분의 1이 파산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적자가 나니 결국 조합원인 대기업 직원들의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

대형 정유사 이데미쓰와 인력회사인 리크루트홀딩스를 비롯해 200여 개 회사가 올 회계연도 시작과 함께 직원들의 보험료 부담 수준을 높였다. 직장인 전체 평균으로도 후기 고령자 보험이 도입된 2008년 이후 10년 연속으로 직장인들의 건강보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아예 파산한 건강보험조합도 10년 새 400여 곳이나 된다. 조합이 파산하면 직장인들은 협회건보에 가입하게 된다. 국가에서 보조를 해주는 협회건보가 늘면서 2015년도에 국고에서 1조3000억엔이 투입됐다. 특히 고령자가 늘면서 최근에는 또 다른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도쿄 = 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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