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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태풍 비껴간 제주 가뭄에 제한급수…말라버린 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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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 44년 만에 최저, 기록적인 폭염 "충분한 비 하늘에 바랄 뿐"

연합뉴스

말라버린 제주 삼양 취수원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계속된 가뭄으로 바짝 말라버린 제주시 삼양 1취수원에서 취수원 관계자가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2017.8.7 jihopark@yna.co.kr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태풍에 비라도 많이 내려주길 바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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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 수확철인데 쭉정이만 남았어요"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7일 여름들어 가뭄과 폭염이 이어지는 제수시 소길리 한 깨밭에서 한 농민이 열매를 벌려 노랗게 마른 깨알을 들어보이고 있다. 2017.8.7



태풍 '노루'가 한반도를 비껴간 7일 제주시 애월읍 지역 농민들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태풍이 지나가면서 가뭄과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제주도에 단비라도 뿌려줄 것을 바랐지만 기대는 여지없이 비껴갔다.

속절없이 내리쬐는 태양은 밭작물은 물론 농민들의 마음까지 바짝 말려놓았다.

가수 이효리가 신혼집을 마련해 유명해진 제주시 중산간 마을 애월읍 소길리의 한 깨밭은 수확이 한창이었지만 농민들 마음은 무거웠다.

3천300여㎡(약 1천평)의 깨밭은 비가 충분히 오지 않은 탓에 열매가 잘 영글지 않아 쭉정이(껍질만 있고 속에 알맹이가 들지 않은 열매)가 반 이상이었다.

"이것 보세요. 알맹이가 없어요."

밭에서 수확하던 박정열(61·여)씨는 열매를 벌려 노랗게 마른 깨알을 보였다.

박씨는 "소금처럼 연한 하얀 빛의 깨알이 나와야 하는데 노랗게 말랐다. 속 안에 알맹이가 가득해야 기름이 잘 나오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비만 충분히 왔어도 대풍이었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작물 자체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막상 수확하면 평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게다가 요즘 사람들이 품질 좋은 깨만 찾기 때문에 상인들도 이런 상품은 사가지 않거나 가격도 잘 안쳐준다"고 속상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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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는 제주 상수원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계속된 가뭄으로 인해 제주시 어승생 제2저수지의 저수량이 만수량인 50만t의 7%에도 못미치는 3만4천t까지 떨어졌다. 사진은 7일 오전 하늘에서 바라본 어승생 제2저수지의 모습. 2017.8.7 jihopark@yna.co.kr



올해 장마 기간(33일·6월 24일∼7월 26일) 제주도(제주·서귀포의 평균값)의 강수량은 평년(398.6㎜)의 23%인 90.2㎜로, 1973년(30.9㎜)에 이어 44년 만에 가장 적었다.

특히 제주 서부지역의 가뭄 피해가 심각했다.

고산 23.1㎜, 한림 25㎜, 대정 17㎜, 마라도 4㎜, 가파도 11㎜ 등 평년의 2∼13%, 작년의 2∼20% 수준밖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북부도 평년의 10∼35%밖에 되지 않았으며, 대기 불안정으로 소나기 물폭탄이 쏟아진 남·동부 역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강수량이 10∼40% 수준에 그쳤다. 심지어 한라산의 백록담은 물이 다 빠져 바닥을 드러냈다.

가뭄이 계속 이어진다면 피해가 월동채소로 이어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8월 중순부터 양배추와 브로콜리, 파프리카 등 월동채소를 밭에 심기 시작하는데, 물이 충분하지 않으면 농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날부터 제주시 애월읍과 한림읍 등 일부 산간마을에는 격일제 급수가 시작됐다.

이 때문에 성수기를 맞은 펜션과 음식점 등은 비상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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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현장 방문한 고경실 제주시장
(제주=연합뉴스) 7일 고경실 제주시장이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가뭄 현장을 방문해 지역 주민으로부터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2017.8.7 [제주시 제공=연합뉴스]



제주시 애월읍 해안동·월평·유수암·소길리와 한림읍 원동·어음리·금악리, 서귀포시 광평·동광·창천리 등 20개 마을에 격일제로 제한급수가 실시되며 해당 마을에는 현재 7천500여명이 살고 있고 330여개 펜션이 운영중이다.

소길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고모(57·여)씨는 "전날 밤부터 물을 미리 받아놨다가 미리 음식준비를 해 놓고 오늘 장사를 시작했다"며 "격일제 급수이기 때문에 물이 나오는 날과 나오지 않는 날에 맞춰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데 격일제 급수가 길어진다면 정말 큰일"이라고 털어놨다.

지하수를 끌어쓰는 일부 음식점과 펜션 등은 비교적 정상적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영업장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가뭄 피해와 제한급수를 실시하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애로사항을 청취한 고경실 제주시장은 "조만간 제주에 40㎜ 비 예보가 있는데 부디 충분히 비가 내려주길 하늘에 바라고 있다"며 "만약 가뭄이 더욱 길게 이어진다면 양수기와 소방차 등 행정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가용력을 투입, 농가와 식당·펜션 등에 최소한의 피해가 나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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