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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광역·시내버스 동승르포] '2시간30분 운전에 휴식 5분' "생마늘, 생양파 먹고 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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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씨(37)가 모는 경기 안양 시내버스 11-3번은 만안·동안구, 과천시를 거쳐 서울 서초·강남구 도로를 달린다. 송파구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회차한다. 이씨가 속한 회사의 시내버스 중 운행거리가 가장 길고 출발 시간도 가장 이르다.

지난 1일 오전 4시55분쯤 차고지를 나선지 10분도 안돼 버스 좌석이 꽉 찼다. 승객들은 정류장을 지날수록 계속 버스 안을 채웠다. 대부분 졸거나 스마트폰을 보느라 버스 안은 조용했다. 정적 속에서 이씨는 차가 1분 남짓 신호에 대기할 때마다 핸들쪽으로 몸을 숙이거나 허리를 좌우로 돌리며 졸음을 쫓았다.

출발 2시간 30분만에 차고지에 돌아온 이씨에게 주어진 휴식 시간은 단 5분. 화장실을 다녀오는 데 시간을 다 썼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에는 한차례 운행을 마친 시내버스 기사는 10분 이상, 시외버스 기사는 15분 이상 쉬도록 규정한다. 시내버스도 2시간 이상 운행하면 15분 이상을 쉬어야 한다. 이씨는 “이번에 운행을 나갔다 돌아오면 25~30분 정도 휴게시간을 줄 것”이라며 “이미 첫 차 운행으로 지칠대로 지쳤는데 휴게시간 몰아서 주는 게 무슨 소용인가”라고 했다.

다른 운수업체의 광역급행버스도 상황은 비슷했다. 경기도 외곽 신도시와 서울 도심을 오가는 광역급행버스를 모는 ㄱ씨는 같은날 오전 6시부터 버스를 몰았다. 승객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지만 승객들은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기에 ㄱ씨는 버스가 서울 도심 회차지점에서 신호대기를 하는 동안 겨우 몸을 폈다.

운행을 마친 ㄱ씨는 차내 유실물을 점검하고 입구를 공기분사기로 청소했다. 차고지 휴게실에서 14분을 쉰 뒤 다음 운행에 들어갔다. ㄱ씨는 “그나마 휴가철이라 출근시간대 이 정도 쉬는 시간을 확보한 것”이라고 했다.

버스기사들이 잠시 들른 휴게실 환경도 열악해 보였다.ㄱ씨 회사의 6.6㎡ 남짓 되는 휴게실엔 근무일정표가 놓인 책상 1개, 의자 3개, 커피머신 1개, 그리고 성인 8명이 누울 만한 평상과 목침 3개가 전부였다. 10㎡가 조금 넘는 이씨 차고지 휴게실에는 소파가 여럿 있었지만 성인이 누울 수 있는 긴 소파가 2개뿐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버스기사는 1인용 소파에 앉은 뒤 나무 의자를 가져다가 간신히 발을 뻗었다.

해가 제법 솟은 시간대의 두번째 운행 때도 두 기사들은 피로를 쫓기에 여념이 없었다. 운전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기사들은 현금이 없다는 승객, 교통카드로 인증받지 않은 카드를 단말기에 갖다대며 ‘왜 결제가 안되느냐’고 묻는 승객, 갑자기 버스 앞에 차선을 끼어드는 화물차까지 상대했다.

이씨는 ‘졸음방지 껌’을 항상 갖고 다닌다. 그는 “동료 중 생마늘, 생양파 먹는 사람도 있다”면서 “허벅지를 꼬집기도 한다”고 했다. 이씨는 지난해 졸음운전으로 작은 사고를 낸 적도 있다. ㄱ씨는 “안전운전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전화 통화를 해야 잠이 잘 깬다”고 했다.

버스 기사들은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씨는 회차지점인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버스를 세워 잰걸음으로 공중화장실을 찾았다. 마침 같은 노선 버스가 먼저 정차가 돼 있었다. 이씨는 “앞 차가 없었으면 배차 간격을 신경쓰느라 화장실에 못갔을 것”이라며 “참다 못견디면 승객들에 양해 구하고 주유소에서 일을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두번째 운행 이후에 이씨와 ㄱ씨에게는 30~40분 정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첫 운행보다 시간이 늘었지만 주어진 시간에 가스 충전, 주유, 차량 점검, 점심 식사를 모두 해결해야 했다. 가스가 떨어져 차고지 내 충전소에 들른 ㄱ씨는 먼저 충전 중인 버스가 충전을 마치길 기다리는 데만 8분을 썼다.

이씨는 직접 주유를 마치고는 10분 만에 점심 식사를 끝냈다. 기사 몇몇이 모인 식당은 식기와 수저가 부딪히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5분 남았네” 같은 말이 이따금 새어 나왔다. 이씨는 휴게실에서 남은 15분을 보냈다. 이씨는 “많이 먹으면 졸리다”면서도 “사람이 밥 먹고 조금이라도 자고 가야 하는데…”라고 했다. 이씨는 더 쉬고 가라는 동료 기사의 말에 “늦게 나가면 사람에게 치이고 욕먹고 그러잖아요”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신호를 위반하고 앞차랑 밀착해서 빨리 운행하면 그만큼 쉬는 시간이 확보된다”며 “그러면 승객들도 위험할뿐 아니라 뒷 차 기사들도 배차 간격을 늘릴 수가 없어 서둘러 운행해야 하고, 쉬는 시간은 줄어들게 돼 다른 기사가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두 기사는 한목소리로 “회사와 정부는 ‘차가 차고지에 도착해 기사가 교통카드 단말기를 끄고 출발하기 전 다시 켜는 시간’을 쉬는 시간으로 간주한다. 회사는 그 시간을 기준으로 배차 시간을 짜는데, 아주 보수적인 산정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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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경기도 내 두 도시를 오가는 광역순환버스를 탔다. 그러나 수도권 교통량이 적은 휴가철인데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 교통 체증에 막혀 한발도 움직이지 못했다. 늘어진 차량 행렬에 버스기사 ㄴ씨는 회사에 전화를 걸었고,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외곽순환도로는 우회로가 마땅치 않아 사고가 바로 교통체증으로 이어진다”며 “광역급행·시내버스는 손님이 없으면 잠깐 차대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지만 순환버스는 허리 한번 펼 짬도 안난다”고 말했다. 또 “종점에서 차고지로 들어가는 데만 3분, 나오는 데 5분이 걸리는데 회사는 배차 시간을 빠듯하게 짠다”고 했다.

그나마 ㄱ·ㄴ씨가 모든 광역버스는 지난달 9일 경부고속도로 졸음운전 사고로 주목을 받아 “2시간 이상 운행 후 15분 휴식을 지키라”는 지시를 회사 측으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정부에서 대책 마련한다고 하니 부랴부랴 시늉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내버스 기사들의 근무 환경은 광역버스 기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악하다고 한다. ㄱ씨는 “광역버스 기사들도 시내버스는 ‘아오지’라고 부른다”고 했다. 주요 도시와 서울을 오가는 시내버스의 노선은 주행거리가 광역버스와 비슷하지만 고속도로가 아닌 시내도로를 운행하기 때문에 난도가 더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다 시내버스는 광역버스보다 좌석 수가 적고 서서 타는 사람도 많아 사고 발생시 위험도 크다고 한다.

이씨는 “정부의 대책이나 국민들의 관심사는 시내버스보다는 광역버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시내버스에도 혜택이 돌아간다고는 하지만 실제 이뤄질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버스 주요 회차 지점에 휴게시설을 만든다고 하는데, 회차 지점은 주로 땅값이 비싼 도심인데 회사가 얼마나 좋은 공간을 마련해줄지 의문”이라며 “경기도 광역버스가 올해 12월부터 준공영제를 시행해 노동 시간을 줄인다는데, 준공영제 시행이 안되면 시내버스 기사들은 여전히 인력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노선버스업을 근로기준법 59조상 특례업종에서 제외키로 잠정 합의했다. 특례업종에 해당하면 일주일에 12시간 이상 연장 노동을 할 수 있다. 이씨는 “사고가 터진 뒤에야 정부나 정치권에서 대책을 내놓은 걸 보니 씁쓸하다”고 했다. 이씨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

<윤승민·유수빈·심윤지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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