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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정동칼럼]나팔수와 저격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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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촛불의 폭발적 염원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가 출범 두 달 반을 지나고 있다. 특수상황에서 정부가 출범했고, 인수위를 대신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01개의 대선 공약을 100대 과제로 압축 제시했으며, 이에 대한 재정계획도 마련했다. ‘만사’라고 부를 만큼 중요한 ‘인사’가 우여곡절의 어려움 속에서 마무리되고 있으며, 신정부 인사들로 구성된 첫 국무회의가 개최되었다. 대통령 지지율은 조금 하락했지만 여전히 기록적인 80%에 가깝다. 그럼에도 상황은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먼저 여소야대 구도는 대통령 지지도를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언론환경 역시 지난 진보정부 10년 때보다 더 나쁘다. 물론 과거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밀월관계는커녕 아예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던 그 ‘광기의 돌격’에 비하면 다행일 수도 있다. 또한 지난 9년 보수정부의 적폐와 실패로 인한 반사이익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언론과 기득권이 품고 있는 서슬퍼런 칼날의 기운은 순간순간 느껴진다. 한·미 정상회담과 G20에서의 의외(?)의 성과에 대한 긍정적 평가들 사이에도 반감의 편린들이 똬리를 품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에 즈음하여 유시민이 이른바 ‘어용진보’의 역할을 제시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어용의 사전적 의미는 권력에 아부하여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어용은 변화를 말하는 진보와는 형용모순일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다. 유시민은 9년 만의 공수전환의 시기에서 대중을 선동해서 권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으며, 다만 언론의 왜곡과 기득권의 반격에 맞서 촛불정부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해주는 이가 없었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것은 보수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진보언론이나 지식인들도 근거 없는 악의적 프레임에 합세하고 정권을 향한 맹폭에 적극 동참했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세상의 권력구조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뼈저리게 경험해왔다. 게다가 진보는 분열에 취약하고 도덕적 무오성의 자가당착에 쉽게 빠짐으로써 권력의 현실감을 잃기 쉬운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진보정권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우며 저격수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정부는 또다시 양측으로부터 배제되는 고립무원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초기 인사과정에 나타난 개방 및 개혁성의 부족, 그리고 대외정책의 보수화 경향이 부각되면서 진보세력의 좌절감은 이미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지난 9년 나름 보수기득권을 향한 저격수 역할을 꾸준히 했다. 물론 그것은 권력투쟁의 차원이 아니라, 평생 배워온 학문과 비판적 지성의 책임이자 표현이었다. 정부가 바뀌고 난 이후 사실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대선캠프에서 자문을 했고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과거의 역할을 그대로 반복할 수는 없다. 물론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본연의 임무대로 건설적 비판과 권력의 감시기능을 내려놓을 수는 없겠지만, 당분간 나팔수로서의 의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국민의 소리를 전하는 나팔수이지, 정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신정부가 국민의 뜻에 등을 돌리는 순간 나는 다시 치열한 저격수로 돌아갈 것이다.

정치인들의 자기 정치와 관료들의 놀라운 생존본능은 데자뷔 같다. 지난 진보정권에서 어설픈 탕평책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늘 양지를 향해 말을 갈아타는 인사들이 이번에도 득시글거린다. 숨죽이고 반성해야 할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오히려 커지고 당당해지기까지 한다. 그들은 탕평에 결코 감읍하지 않으며, 구정권 인사들의 재활용에 대해 감사하는 법이란 없다. 앞에선 표정관리하면서 뒤에선 비웃고 있을 것이다. 농단으로 인해 망가진 국정이 제대로 회복되기도 전에 그들의 사적 욕심이 이미 꿈틀거린다.

세상은커녕 정권도 바뀌지 않은 것 같다는 자조적 토로가 자주 나온다. 촛불정신이 희미해지고, 개혁의 예봉이 꺾이는 순간 기득권 세력은 대대적인 연합공격을 해올 것이 뻔하다. 이번에는 그리 되면 안된다. 왜냐하면 촛불이 탄생시킨 정부이기 때문이다.

당위가 현실을 온전히 바꿔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국민이 만들어준 권력에 자신의 사적 공간을 구축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도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공평하게 간다는 것과 타협한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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