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날의 혼선은 정부가 자초했다는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정부는 애초부터 공론화 작업을 추진하면서 시민배심원제와 공론조사의 개념을 혼동하는 우를 범했다. 사실 시민배심원제와 공론조사는 사회적인 갈등관리 기법의 차원에서 완전히 다른 시민참여형 숙의의 실천방법이다. 시민배심원제는 법원의 국민참여재판처럼 판결의 성향이 강하지만, 공론조사는 참여진의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권자인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날 공론화위원회가 “공론조사는 찬반 의사 결정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시민배심원제와 공론조사의 용어를 혼용하면서 개념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도 처음부터 이런 문제점을 알았다. 그렇지만 정부가 전통적인 공론조사의 방식에서 벗어나 ‘공론조사 결과-정책 반영’이라는 혁명적인 민의수렴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좋게 해석했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가 ‘찬반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공론조사의 원칙을 천명함으로써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공론조사는 한국 사회가 처음 시도하는 숙의 민주주의다. 시민의 손으로 미래세대의 안전 문제를 심도 있게 토론하는 소중한 기회이다. 하지만 원전 백지화는 찬반 양론이 각축하는 갈등 사안임을 잊어선 안된다. 시행착오가 잦아지면 자칫 원전 안전이라는 대의명분을 잃을 수도 있다. 정부는 혼선이 계속되지 않도록 고민해야 한다. 특히 혼선을 빌미 삼아 공론화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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