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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성과급 못 주는데 시간이라도 돌려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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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일 근무제 도입한 '꿈의 회사' 여행박사 황주영 대표]

"상담이나 예약 월·화에 집중돼… 주말은 쉬는 편이 더 좋아"

'직원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 月 하루 조기 퇴근 제도도 효과적

파격적인 복지 제도로 '꿈의 회사'라 불리는 여행박사가 이번엔 주4일제를 도입한다. 여행박사는 8월부터 첫째·셋째 주와 둘째·넷째 주 금요일에 쉬는 인원을 나눠 격주로 주4일 근무를 시행한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3개월간 시범 운영하고 문제점을 보완해 내년에 정착시킬 계획이다. 근로시간은 줄지만 월급은 그대로다. 여행박사는 이전에도 '전 직원이 대선 투표하면 용돈 50만원씩 지급' '출퇴근 왕복 3시간 이상인 직원에게 오피스텔 제공' 등 남다른 복지 혜택으로 화제가 됐다.

24일 만난 황주영(49) 여행박사 대표는 "한때는 고객 중심으로 운영해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직원이 좋은 상품을 만들면 고객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거든요. 주4일제 도입도 일을 덜 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직원이 충분히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할 수 있다'는 취지죠."

조선일보

황주영 여행박사 대표는“주 4일제 도입은 회사가 했지만 유지하기 위해선 직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업계 최초로 주 4일제를 도입한 만큼 사명감을 갖고 정착시키겠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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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간 복지'라는 말을 꺼냈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성과급을 못 준다면 시간이라도 돌려줘야죠. 직원들도 금전적인 혜택보다 '시간 복지'에 가장 열광해요." 여행박사는 한 달에 하루 3시간 일찍 퇴근하는 '라운지데이'와 일 단위로 쓰는 월차(月次)가 아니라 1시간, 2시간 단위로 쓸 수 있는 시차(時次) 제도를 이미 운용 중이다. "근무 시간을 조금씩 줄여봤는데 매출에 전혀 영향이 없었어요. 상담이나 예약의 50%가 월요일·화요일에 집중되기 때문에 차라리 주말에 푹 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죠."

지금까지 도입한 모든 제도가 성공적이진 않았다. 팀장 이상급 임원을 직원 투표로 뽑다가 2013년 창업자인 신창연 당시 대표가 한 표 차로 물러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황 대표는 "그 덕분에 난데없이 제가 대표가 됐다(웃음)"면서 "다른 회사 대표를 만나면 '황 대표는 언제까지야'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투표 한 달 전엔 일이 손에 안 잡히고 팀장이 자주 바뀌다 보니 업무에 차질이 생겼죠. 직원들의 동의하에 당분간은 투표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황 대표는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윗사람이 독선적으로 결정하지 않는 기업 문화가 만들어졌다"면서 "실패를 겪더라도 일단 직원들이 원하는 쪽으로 가보고 싶다"고 했다.

황 대표는 IMF 경제위기로 여행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다니던 여행사를 그만뒀다. 이후 2000년 신창연 전 대표와 자본금 250만원으로 여행박사를 창업했다. 그는 "초반엔 해가 떠있을 때 퇴근한 적이 없고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했다. "온라인 예약이 활발하지 않을 때라 다들 현금을 들고 직접 사무실로 찾아오셨으니까요. 은행 갈 시간도 없어서 휴지통에 돈을 쌓아놨다가 청소하시는 분께 혼나기도 했어요."

반면 요즘 여행은 떠나기 직전에 온라인으로 예약하는 것이 트렌드란다. 젊은 고객이 다수인 여행박사는 온라인 예약이 전체 예약의 50%를 넘었고 온라인 이용자 점유율은 업계 3위다. 황 대표는 "예전엔 여행업이 경기에 굉장히 민감했는데 요즘은 의·식·주보다 '여행부터 가고 보자'는 사람이 많아졌다"면서 "이런 사회적 열망이 근로 시간을 점차 줄여나갈 것"이라고 했다. "주말에도 일하던 시절엔 주5일제가 가능할까 걱정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정착했잖아요. 저희를 시작으로 주4일제가 점차 다른 회사에도 번져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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