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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문재인 정부가 증세론을 다루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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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12년 전 노무현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 ‘증세 정국’을 돌파하고 있다.

강력한 개혁 추진기인 집권 초,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 중심의 타깃을 설정해 증세 드라이브에 속도를 낸 것이다. ‘촛불 민심’과 경제민주화, 달라진 언론 환경 등도 증세 추진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집권 후반 ‘보편적 증세’ 담론으로 역풍을 맞았던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의지로도 읽힌다.

문재인 정부의 증세 드라이브는 제안 주체·타깃·프레임 설정에서 노무현 정부와 차이가 있다.

우선 대통령이 전면에 서기 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증세 물꼬를 텄다. 추 대표는 지난 20일 첫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초고소득자·초대기업에 대한 증세를 ‘제안’했다. 당의 선제적 제안 이후 청와대가 이를 수용하면서 논의가 시작되는 모양새를 만든 것이다. 휘발성 강한 이슈를 던진 시기도 집권 초반 국정수행 지지율이 80% 안팎을 보이고 있는 때를 택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4년 차인 2006년 초 양극화 해소를 위한 증세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의 ‘세금 폭탄’ 프레임에 갇혔고 그 결과 2006년 지방선거 참패 요인으로 작용했다.

문재인 정부는 증세 타깃을 과표기준 5억원 이상 고소득자, 2000억원 이상 대기업으로 명확히 했다. 2000억원 이상 대기업은 문 대통령 공약이었던 ‘500억원 이상’ 보다 범위를 좁혀 공약 후퇴라는 평가도 있지만, 논란이 일 수 있는 중견기업을 법인세 인상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점에서 이슈 선명성을 명확히 했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에 참여한 한 의원은 “세금폭탄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처음에 잘못 설계해서 세금폭탄 프레임에 들어가 버리면 건전한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타깃을 좁혀 증세 대상을 줄일수록 자유한국당의 ‘세금폭탄’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문 대통령은 아예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다. 일반 중산층과 서민들, 중소기업들에는 증세가 전혀 없다”며 증세 범위 확대를 사전 차단했다.

증세 프레임 설정에도 공격적으로 나섰다. ‘슈퍼리치 증세’ ‘명예과세’ ‘대한민국 1% 증세’ ‘사랑과세’ 등이 대표적이다. 증세 대상이 소수이고, 그 소수에게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름짓기에 적극 나선 것이다. 이 같은 대응은 노무현 정부 때 야당의 세금 폭탄 프레임을 의식한 위기감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세금폭탄 프레임으로 뒤집어 씌울까를 가장 걱정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의원은 “개혁에는 반드시 저항세력이 생기기 마련인데, 노무현 정부는 개혁에 대한 구체적 타임 테이블 없이 전 사회적 범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혁이슈를 던졌다”며 “지금 청와대는 개혁 우선순위와 프로세스를 (과거보다) 정교하게 가져가는 측면이 있다”고 비교했다.

‘정치민주화’를 우선했던 노무현 정부 때와는 달리 국민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 개혁과제를 우선에 둔 점도 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낸 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집권 초기 주요 혁신 과제들을 먼저 하는 것은 정부가 들어선 성격과 과정이 달라서 그렇기도 하다”며 “촛불을 통해 들어선 현 정부는 국민들의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는 요구가 집약돼 있기 때문에 혁신 과제를 우선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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