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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김지형 신고리 공론화위원회 위원장 “가보지 않은길, 두렵고 긴장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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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4일 꾸려졌다. 사회갈등 현안 해결에 있어서 ‘가보지 않은 길’을 지휘하게 된 김지형 공론화위원장(58)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첫 회의를 갖고 곧바로 기자들과 만났다.

김 위원장에게 가장 많이 쏟아진 질문은 이미 2조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되고, 탈원전 논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 중대한 사안에 대한 위원회 활동의 법적 근거가 무엇인가였다. 시행령에 해당하는 국무총리 훈령으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며,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는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와 관계된 질문이었다.

김 위원장은 “공론화위원회가 공사 중단 여부에 대한 결정을 위임 받았다면 법령의 명백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만 저희가 공사 중단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을 갖지 않게 돼있다”고 말했다. 신고리 5·6호기의 중단 여부는 3개월 내에 공론화위원회가 꾸릴 시민배심원단이 결정하게 된다.

김 위원장은 이어 “사회갈등 분야, 정책 통합을 관장하는 국무조정실이 필요에 따라 이런 사회 갈등 조정을 위한 공론화 필요성을 느꼈고,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절차를 확인해달라는 것이 저희가 받은 임무”라며 “그런 이상 시민배심원단을 통해 의견을 모으는 작업을 하는데 법적인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국회가 나서야 할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 “공론화 작업은 신고리 5·6호기의 공사를 멈출지 말지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라며 “그 결과에 따라 입법 논의가 필요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만약 공사 계속해야 한다고 결론난다면 입법조치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사를 멈춰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지거나 탈원전을 본격 논의하기 위해서는 입법이 검토될 여지가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추후 국회에서의 논의를 아예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아직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에는 많은 위험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인지 알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개척자의 길을 걸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하며 “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나온 반응은 따뜻한 논조보다는 좀 차갑고 매서운 논조가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격려나 기대보다는 우려나 경계, 비판의 목소리들이 더 크게 들렸다”며 “위원회가 탄생부터 별로 축복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고 두렵고 긴장도 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절차적 정의(due process)를 지켜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이 중용(中庸)”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다양한 가치, 견해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생각해야 된다”며 “내가 행복해야 세상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다. 생각과 관점의 차이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 아니다”고 말했다. “객관적으로 아무리 공정하다고 한들 공정하지 못하다고 의심 받을 대목이 있으면 흔들릴 것”이라며 “위원장으로서 공정성을 의심 받을만한 언행에 조심하겠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전문가 중심의 논의가 더 적합한 방식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공론화 방식이 전문가의 견해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오히려 “전문가들이 적극적이고 활발할게 참여할 공간이 될 것”이라며 “오히려 시민들과 전문가들의 의사소통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절차”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이 이 기회에 전문지식을 활용해 시민들을 설득할 의무가 있다”며 “(전문가들도)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정도”라고 말했다. “국가의 모든 정책 작용은 시민을 기초로 하는 것이고, 시민은 전문가를 통해 사안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이해하고 평소 가진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판단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논의 기간이 짧다는 지적에는 “위원회가 풀어가야 할 가장 큰 숙제”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논의가 탈원전 자체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으로 국한했다는 점에서 시간적 제약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독일 등에서 비슷한 전례들이 있다는 점에서 “후발주자의 이점도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여부가 공론화 의제로 채택된 배경에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김 위원장은 “공론화 의견을 모을 당면 의제는 신고리 5·6호기를 멈출지 말지이지만, 공론화 논의의 배경에는 탈원전으로 갈지 말지가 깔려있다”며 “신고리 5·6호기 중단 여부와 탈원전은 맞물려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결론은 공사 중단과 속행 중 하나로 모아질 것이고 그로 인해 탈원전 정책이 영향을 받겠지만, 탈원전 여부까지 이것으로 최종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론이 어떤 식으로 나오든 탈원전 논의는 계속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공사 중단은 탈원전 찬성이고 속행은 반대라는 등식이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논의의 결론은 탈원전을 해야 하므로 공사를 멈춰야 한다는 견해, 탈원전을 하더라도 이미 진행중인 공사 멈출 필요 없지 않느냐는 견해, 탈원전으로 가서는 안되지만 공사를 멈춰서도 안된다는 견해, 탈원전에 반대하지만 특정 지역의 위험성 가중 때문에 이번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견해 등 여러 가지로 나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견해가 갈린다고 분열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상대방의 견해가) 틀렸다고 배제하는 태도가 아니라, 견해가 서로 갈릴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판단에 필요한 충분한 견해와 지식을 공유하고 토론을 통해 결정한다면 그것은 분열이 아니라, 통합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위원회는 이날 첫 회의에서 공론화 관리의 기본원칙을 논의하고, 공론화위원회 운영계획, 운영세칙 등을 심의·의결했다. 8명의 위원 중 이희진 한국갈등센터 사무총장과 이윤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를 대변인으로 지정해 언론의 문의에 소상하게 답하도록 했다.

위원회는 매주 목요일 정례회의를 갖기로 했으며, 그 사이에 수시로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모든 회의 후에는 기자회견을 할 것이며, 회의록도 별도 개설될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관심 있는 모든 시민들이 논의 과정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김 위원장은 시민배심원단이 어떤 규모로 언제쯤 꾸려질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해보지 못했다며 말을 아꼈다. 오는 27일 2차 회의 때 시민배심원단의 표본을 어떻게 추려낼 지에 대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고 결정할 예정이다.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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