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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총력추적] 정유라, 왜 최순실에게 불리한 증언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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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빈 구멍으로 남아있는 국정농단에서 정윤회의 역할

“여러 만류가 있었고 나오기 싫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오게 됐다. 검사가 제 증인출석을 요청했고, 판사가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면 나오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7월 12일, 삼성 이재용 부회장 재판정에 모습을 드러낸 정유라씨의 말이다. 당초 변호인 측은 “정유라씨가 건강이 나쁘고 현재 재판을 받고 있어 출석이 어렵다”는 내용의 불출석 사유서를 재판부 측에 제출했었다.

이날 정씨의 법정 출석 증언에 대해 정씨 및 최순실씨 변호인 측의 반응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멘붕’이었다. 정씨의 변호인을 맡고 있는 오태희 변호사는 “살모사 같은 행동으로 최순실씨 조카 장시호보다 더하다”며 “신뢰관계가 깨졌기 때문에 사임계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 변호를 맡고 있는 이경재 변호사는 보도자료를 내 “변호인 접근을 봉쇄하고 증언대에 내세운 행위는 위법”이라며 “특검의 출석 강요와 회유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그 근거로 이날 재판이 시작된 후인 오전 10시23분 변호인단에 도착한 문자메시지를 제시했다. 최씨 변호인단은 이날 새벽, 정씨가 서울 신사동 집 앞에서 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CCTV 영상도 근거로 제시했다. 이 CCTV는 정씨 주거인 미승빌딩에 설치된 것이었다. 이날 정씨는 특검 측에 전화를 걸어 신변보호 요청을 했고, 당초 알려진 것처럼 봉고차가 아니라 특검 관계자의 검은 승용차를 타고 이동했다. 이동하는 와중에 정씨는 동승한 특검 관계자에게 “법정에 출석하려면 신분증이 필요하냐”고 문의했고, 신분증을 가지러 집에 돌아왔다가 다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라씨가 지난달 2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정씨 법정 출두를 둘러싼 ‘설왕설래’

<주간경향>은 사건 초기인 지난해 9월, 정유라씨가 독일 등지에 체류하며 탔던 말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추적하는 기사를 썼다. 당시 흥미로웠던 것은 유럽 승마 관련 매체들이 논란이 불거지기 전 정씨를 ‘삼성팀의 일원’이라고 소개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말의 소유자도 삼성이라고 이야기했다. 당시 보도에 대해 삼성 측은 전면부인했다. 하지만 경향신문 보도를 통해 결이 다른 삼성 측 주장이 나왔었다. 경향신문은 당시 ‘삼성 관계자’의 말을 빌려 “승마협회 회장사로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말을 구입했는데, 정 선수 측으로부터 말을 이용할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와서 말을 쓸 수 있게 한 것”이라며 “그러나 유지·관리비용이 많이 들어 8월에 다시 팔아 현재는 말을 리스하는 방식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삼성 측의 해명을 보도했다. 삼성 측의 이런 입장은 통일적이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접촉한 ‘삼성 관계자’는 그렇게 해명하는 데 비해, 당시 삼성그룹의 홍보를 총괄하던 미래전략실 관계자들은 그런 삼성 측의 ‘해명’조차도 “금시초문인 이야기”라는 반응이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재판에서 삼성 측의 전략은 당초 경향신문에 삼성 측이 했던 해명과 비슷한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말을 구입한 것은 최순실·박근혜 경제공동체에 대한 뇌물이 아니라 2020년 도쿄올림픽을 대비한 국가대표선수 지원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삼성 측의 계획을 중간에서 속인 것이 최순실이었다는 것이 삼성 측의 논리였다. 그런데 그게 정씨 증언으로 뒤엎어진 것이다.

재판을 통해 밝혀진 정유라의 ‘행적’

최순실 국정농단 초기 국면, 보도되지 않았지만 정씨와 최씨의 독일 생활을 추적하던 정치권과 언론 사이에서는 정씨가 자신의 SNS에 올린 초음파 사진이 화제를 모았었다. 정씨는 사진과 함께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으며, 말도 부모도 다 저버리고 아이를 살리고 싶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정씨는 글에서 임신 25주차라고 밝히고 있지만, 글을 올린 시점이 언제인지 정확히 특정되지는 않았다.

2014년 9월 20일, 정유라씨는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이번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씨는 그해 12월 17일에 열린 승마인의 밤 행사에는 “당시 임신 중이었고 집에서 나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남편 신주평씨와 단칸방 생활을 했다거나, 신씨와 정씨를 갈라놓기 위해 어머니 최씨가 조직폭력배를 동원하거나 재산상속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은 일 등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져 있다.

정씨가 독일로 출국한 것은 2015년 6월 30일이었고, 아들을 출산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다. 정씨는 이번 재판에서 출국할 당시 어머니 최씨로부터 “2020 도쿄올림픽 대비 훈련을 위해 독일 전지훈련을 가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없고, “일단 독일에 가서 피해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정씨의 독일행에는 남편 신씨·아들·아들의 보모뿐 아니라 신씨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딸 때 탔던 말(로얄 레드)도 같이 갔다. 최씨는 정씨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가 타던 다른 말들도 같이 보냈다. 독일행에는 승마계에서 오랫동안 최순실·정유라씨의 대리인 역할을 한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가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로 간 정씨 일행은 여러 곳을 전전한다. 공통점은 승마훈련장이 있는 곳이라는 것. 하지만 이 당시 독일생활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정씨가 승마훈련을 할 의사가 없었다”고 증언한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초기, SBS가 입수해 보도한 정씨의 승마훈련 영상의 맥락도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렇게 해석된다. 말을 타는 정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동영상을 찍은 관계자는 감격한 목소리로 “회장님도 이 영상을 보셔야 할텐데”라고 말한다. 전후 맥락으로 여기서 회장님은 최순실씨를 말한다. 보도 당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는 알 수 있다.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이다. 노 부장의 이름은 결과적으로 조작된 것으로 판명된 정유라 선수의 독일 훈련 일지에도 독일 측 코치 및 승마장과 계약한 당사자로 거론돼 있다.

출산 후 어머니 최씨와의 갈등은 일단 독일행을 통해 봉합되었지만 갈등관계는 계속된다. “정씨는 흥분하면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년’과 같은 욕설을 쏟아냈다.” <주간경향>이 입수해 보도했던 박재홍 단장의 녹취록에 나오는 증언이다. 박 단장은 앞의 K스포츠재단과 별도로 마사회가 독일에 파견했던 인사다(박 단장은 최근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실제 자신이 독일에 정씨 등과 함께 머물렀던 시기에 노승일 부장을 만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논란이 본격화되기 직전까지 정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결과적으로 삼성이 사준 말 ‘비타나V’, 이번 재판에서 ‘살시도’에서 이름을 바꾼 것으로 드러난 ‘살바토르’ 등의 말 사진을 올리며 말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삭제 전까지 정씨는 적어도 인스타그램 상에 올린 글로는 승마훈련과 시합에 나가는 것에 나름의 열정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는 지난해 12월, 정씨가 덴마크에서 체포될 당시 ‘정유라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의 기자메모를 쓴 적이 있다. 이른바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을 취재하며 처음 정유라씨(당시 이름은 정유연)에 대해 주목하고 관련 취재를 시작한 것은 정씨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11년 무렵이었다. 그 후 정치권을 통해 듣게 된 방황과 임신 소식은 충격이었다. 천연덕스런 얼굴로 “수중에 땡전 한푼 없어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국 취재진에게 말하던 정유라씨와 나중에 망명신청을 위해 현지 1급 변호인 블링켄베르를 고용했다는 소식의 정유라 중 어떤 것이 진짜 얼굴인지 궁금했다.

재판기록을 보면 정씨는 2015년 9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코어스포츠로부터 월 5000유로, 한화로 약 650만원을 받아 생활비로 썼다. 게이트가 불거지는 시점부터 코어스포츠에서 지급되던 월급은 끊겼다. 정씨는 법정 증언을 통해 어머니 최씨로부터 “더 이상 돈을 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카드를 지급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후 12월까지 이어지는 도피생활, 검거 후 변호사 비용 등은 누가 댔을까. 이번 정씨의 ‘변심’을 통해 알려지게 된 사실의 일단은 아버지 정윤회씨의 역할이다. 이미 독일에 있을 때부터 멀어진 어머니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 구속되면서, 의지할 데가 없어진 정유라씨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은 것은 이혼한 아버지 정윤회씨라는 것이다.

‘2006년부터 야인’, 정윤회 주장 사실일까

국회 입법보좌관 시절 흑백사진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없던 ‘비선실세’ 정윤회씨의 사진이 공개된 것은 지난 2013년 7월 한겨레신문의 보도를 통해서다. 당시 한겨레의 취재도 ‘비선실세 정윤회’에 맞춰졌다. 정씨는 사진과 함께 제시된 인터뷰에서 비선실세 의혹을 부인했다. 이날 정씨와 함께 사진에 찍힌 최순실씨는 선그라스에 붉은 폴로티, 흰바지 차림이었다. 태블릿을 들여다보는 <시사인>의 최씨 사진과 함께 이날 한겨레가 찍은 최씨의 사진 속 차림은 최씨의 국정농단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정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자신은 “2006년 이후 비서실장을 그만둔 뒤 야인생활을 해왔다”고 주장했고, 그 후 약간의 시기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요지의 주장을 반복해 왔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던 당일, 정윤회씨가 청와대 인근 평창동에서 역학자 이세민씨를 만나 ‘군자(君子)학’을 논했다는 주장은 일견 야인생활을 해왔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에도 가명으로 울릉도에서 CJ그룹의 고위임원을 만나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신동아> 2015년 1월호)이나 박근혜 창조경제 1호인 ‘아이카이스트 사기사건’과 관련한 호텔방에서 박 대통령과 거의 같은 포즈로 패널을 조작하는 사진을 남기는 등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 의혹이 나왔다. 방산비리 의혹으로 초기에 거론되던 이름은 최순실이 아니라 정윤회였다. 자신의 전처 아들 정우식씨의 드라마 출연과 관련, MBC의 안광한 전 사장을 만났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흥미로운 점은 이른바 ‘정윤회 비선실세설’을 최씨도 종종 이용했다는 것이다. 2013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한 정유라씨가 2등에 그치자 경찰을 동원해 심판진을 수사한 이른바 ‘상주사건’ 당시 최씨는 “우리 남편이 누군지 아느냐”와 같은 발언을 통해 자신을 ‘비선실세인 남편의 권력을 등에 업은’ 존재로 과시했다는 것이다.

정윤회씨는 현재 강원도 횡성의 한 아파트에 칩거하고 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정씨는 그리 많지 않은 액수의 전세로 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거의 6개월에 걸친 정유라씨의 장기 해외체류와 변호사 비용을 정씨가 댔다고 하는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그는 과거 청와대 문건유출 재판이나 언론 인터뷰에서 “거의 빈털터리 상태”라고 여러 차례 주장한 바 있다.

이번 국정농단 의혹에서 한 발짝 떨어져 조망해보면 제일 의아한 대목은 오랫동안 비선실세 당사자로 거론되었던 최순실씨 전 남편 정윤회와 국정농단의 핵심 인사인 3인방 중 정호성씨를 제외하고 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수사나 언급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검수사 역시 다르지 않았다. 특검수사 와중에도 언론매체를 활용해 정씨가 종종 자신의 입장을 내보내고 있었는데도 “정씨와는 연락두절 상태”라며 수사하지 않았다.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도 마찬가지다. 특검 관계자는 7월 19일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여러 방면의 수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수사기간이나 인력도 부족한 등 한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당시 특검법에 의해 수사대상이 최순실로 한정되어 있었고, 잠적한 상태인 정씨를 강제수사하려면 영장이 나와야 하는데 제기된 의혹들은 영장을 받을 정도로 사건이 무르익은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아이카이스트 사건 등 박근혜 집권 후 정씨 연루의혹 사건에 대해 이 관계자는 “그 사건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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