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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획] "대포통장이 사람 잡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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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정부가 각종 사기 범죄의 도구로 활용되는 대포통장을 근절하기 위해 개인 통장 개설을 까다롭게 하자 유령법인을 통한 대포통장 개설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간단한 서류만으로도 법인통장을 만들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 틈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최근 통장만 빌려주면 수백만원을 준다는 '대포통장' 모집 광고가 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다. 대포통장이란 통장을 개설한 사람과 실제 사용자가 다른 비정상적인 통장을 말한다.

지난해 1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으로 대포통장을 사고파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 규제가 강화되면서 "통장을 잠깐 빌려주면 수백만원을 주겠다"고 광고해 대포통장을 모집하는 일이 어려워지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모집 방식이 활개를 치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 서울 용산과 영등포 등지를 돌며 노숙인에게 접근해 "명의를 빌려주면 생활비와 숙식을 제공하겠다"고 속이는 방식에서 온라인과 각종 구인게시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수익·단기 알바, 세금 감면, 취업, 가상화폐 '비트코인' 구매대행 등을 내세워 꼬드기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채용을 가장해 월급을 입금할 계좌번호나 통장을 요구하고, 구직자의 개인정보를 악용해 직접 대포통장을 개설한 뒤 유통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등 일자리를 구하려는 절박한 구직자들이 사기 범죄에 노출되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자신의 통장을 빌려준 뒤 임대료를 받지 못할뿐더러 처벌까지 받았다는 글을 종종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이나 모바일 메신저, SNS에서 공공연하게 대포통장 거래가 끊이지 않고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포통장 양도 자체가 불법인 탓에 피해를 당해도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고, 음성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온라인 거래를 확인한 것 역시 쉽지 않다.

통장을 잠시 빌려준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지만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이는 명백한 범죄다.

아무리 대가성이 없다고 할지라도 전자금융법 위반 등에 해당돼 다른 사람에게 절대 통장을 양도해선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대포통장 거래 끊이지 않는 이유

최근 통장을 빌려주거나 양도하면 돈을 준다는 불법 문자메시지가 급증하고 있어 피해 예방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에 따른 국민들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달 7일부터 16일까지 4900만여명에게 대포통장 주의 문자메시지를 통신사 명의로 발송했다.

대포통장은 보이스피싱, 도박 등 범죄의 최종 현금인출 수단이자 숙주 역할을 하며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대포통장 신고내역을 분석한 결과 사기범들은 주로 문자메시지, 구직사이트 및 페이스북 등 SNS를 이용해 대포통장을 모집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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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운데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건수가 579건으로 전체의 73%를 차지했으며, 전년 대비 283%나 증가했다.

최근 금융회사의 신규 계좌 발급 심사 강화 등으로 대포통장 확보가 어려워지자 사기범들은 대포통장 확보를 위해 불특정 다수에게 통장 대여(양도)를 유도하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들은 주로 주류회사·쇼핑몰 등을 사칭해 회사의 매출을 줄여 세금을 절감할 목적이라며 통장 양도 시 월 최대 6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하고 있다.

또한 구직사이트에 구인광고를 게시한 뒤 지원자들에게 기존 채용이 마감되어 다른 일자리를 소개한다며 통장 대여를 요구하는 등 지능화된 수법을 동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이스피싱, 도박 등 범죄의 최종 현금인출 수단으로 악용

갈수록 늘어나는 대포통장을 뿌리 뽑기 위해 검찰이 대대적인 단속과 함께 처벌 강화를 추진한다.

대검찰청 강력부는 최근 전국 보이스피싱·인터넷 도박 전담검사들과 '유령법인 명의 대포통장 근절을 위한 화상회의'를 열어 전자금융거래법 형량을 높이고, 계좌 지급정지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검은 "대포통장 유통 범죄는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악용되는 폐해가 심각하지만 법정형이 징역 3년 이하로 엄중 처벌에 한계가 있다"며 "주관 부처인 금융위원회와 협력해 법정형 상향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대포통장 유통에 조직폭력배가 개입되는 등 갈수록 기업화·전문화되고 있지만, 현행 형법은 형량 4년 이상인 범죄여야 범죄단체로 가중 처벌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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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은 대포통장이 보이스피싱·인터넷 도박 등 다른 범죄의 수단인 점을 고려해,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협력하여 대포통장 계좌 지급정지 제도도 마련할 계획이다.

개인 명의 계좌 신설이 까다로워지면서 법인 명의 대포통장이 지난해 1300개로 전년 대비 30% 증가한 점에 대응해, 금융감독원과 함께 법인의 통장 개설 요건도 강화할 방침이다.

검찰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에서 대포통장 유통조직 16개, 274명을 적발해 73명을 구속했다. 여기에는 유령회사를 앞세운 조직폭력배가 다수 개입했을 뿐 아니라 월 100만∼200만원의 명의 대여료를 노린 대학생, 가정주부, 회사원도 다수 가담했다고 검찰 측은 전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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