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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사드 반대 이유로 "전자파 유해" 외치더니… 측정하자니까 막는 단체들, 그렇다고 뒤로 물러선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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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상의해보겠다던 단체들, 이유도 안 밝힌채 "측정 말라"

경찰 "전자파 無害땐 反사드 명분 약해질까봐 측정 막는듯"

측정에 긍정적이던 주민들도 反사드단체 선동에 반대로 돌아서

野 "이런 간단한 절차조차 정부가 진행할 의지 없다면

원전중단 공론화는 제대로 하겠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레이더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측정하려던 국방부 계획이 21일 무산됐다.

전자파 유해성을 거론해왔던 사드 반대 단체들이 정작 조사를 하려 하자 반대 이유도 밝히지 않고 "측정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했고 국방부가 받아들여 이날 예정됐던 조사를 무기한 보류했다. 전자파 측정은 '자연 생태계 파괴'를 주장해온 반대 단체·주민들 요구를 정부가 수용하고, 그 해결 방법으로 일종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 단체 반발에 국방부는 이날 "지금으로선 전자파 측정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국방부 안팎에선 "반대 단체에 막혀서 전자파 측정 하나 제대로 못 하는데 공청회를 포함한 환경영향평가 과정을 올해 안에 끝낼 수 있겠느냐" "정부의 이런 자세로는 원전 공사 중단 등 다른 분야에서도 공론을 모아 정책을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지난 6일 사드 포대가 있는 경북 성주군과 인근 김천시를 찾아 "지역 주민들 의견을 모아 사드 배치를 추진해 나가겠다"며 '주민이 참여하는 전자파 측정'을 공론화 방법의 하나로 제시했다.

작년 7월 성주가 사드 배치지로 정해진 뒤 항간에선 '사드 레이더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인체와 농작물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취지의 괴담이 돌았다.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여전히 사드 전자파에 불안을 느끼는 주민들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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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국방부는 해당 지자체와 시·군의회 관계자, 주민, 기자 등 참관인 45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드 기지 내 세 지점과 기지 주변인 초전면 소성리(성주군), 농소면 노곡리, 남면 월명리, 율곡동(이상 김천시) 등 총 7곳에서 전자파를 측정할 계획을 세웠다. 주한 미군 설득 작업을 마친 국방부는 지난주부터 지역 주민 대표와 사드 배치 반대 단체들에 현장 검증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사드 배치 반대 단체들은 국방부로부터 처음 전자파 측정 계획을 들었을 땐 "단체끼리 회의를 해보겠다"며 입장 표명을 보류했으나, 지난 18~19일을 기점으로 '반대'를 공식 입장으로 정했다. 지난 20일에는 사드 배치 철회 성주투쟁위, 사드 배치 반대 김천시민대책위, 원불교 성주 성지 수호 비상대책위, 사드 한국 배치 저지 전국행동, 사드 배치 반대 대구경북대책위 등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 및 투쟁위원회와 아무런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전자파 측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전자파 측정 계획 즉각 취소 ▲전략 환경영향평가 실시 ▲사드 가동 즉각 중단과 사드 철거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처음엔 현지 주민들 가운데 전자파 측정 소식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부류도 있었지만, 사드 배치 반대 단체들이 전자파 측정 반대를 선동하면서 주민 여론도 측정 반대 일변도로 흘러갔다고 한다.

그러나 사드 반대 단체는 전자파 측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현지 경찰 관계자는 "전자파 유해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자신들의 사드 배치 반대 명분이 약해질 것을 우려해 막무가내로 반대하고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국방부는 애초 19일 실시하려던 측정 일정을 21일로 한 차례 연기해가며 설득했지만 반대 단체들은 계속 거부했다. 국방부는 전자파 측정을 한 주 더 연기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결국 측정 계획 자체를 접었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지역 단체에서 반대가 있어 지역 주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전자파 측정 때 주민 참여를 보장한다는 애초 약속이 관련 단체 반대로 이행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자파 공개 측정은 주민들의 우려 해소를 위해 실시하려던 것인데 주민들이 원치 않는다니 강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괜히 이걸 강행할 경우 또 다른 갈등 원인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도 고려됐다"고 했다.

전자파 측정은 사드 배치를 위한 공론화 절차 중 비교적 간단하다. 측정 장비를 통해 전자파 수치가 그자리에서 확인되기 때문에 결과를 놓고 논란이 일 여지도 별로 없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공언해온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이보다 훨씬 복잡한 공론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받게 될 경우 거쳐야 할 주민 공청회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단체 등이 주민들과 연계해서 지속적 반대 운동을 벌인다면 설명회나 공청회 개최, 파행, 재개가 반복되면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야당에선 "이 정부의 '공론화 결정'이란 것이 어떤 의도인지 보여주는 것"이란 말도 나온다. 경북 지역의 한 의원은 "현 정부의 본심은 주민들 반대라는 '만들어진 여론'을 통해 사드 배치나 원전 공사를 중단시키려는 것"이라며 "이런 간단한 절차조차 진행할 의지가 없다면 훨씬 복잡한 환경영향평가나, 원전 공사 중단 공론 조사를 어떻게 연내에 끝낼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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