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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무엇도 방해할 수 없는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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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정에서 집중심리를 통해 형성된 생생한 심증으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던 국정농단 사건의 재판이 난항을 겪게 됐다. 피고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발가락 부상을 이유로 연이어 재판에 불출석하여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법정 대면도 무산되고, 법정에 출석한 이 부회장은 증언을 거부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였다. “뇌물공여죄로 재판을 받고 있어서 증언을 하면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증언거부사유 소명서도 제출했다. 박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삼성 측 관계자들 역시 모두 같은 이유로 증언을 거부했다. 이들은 본인들의 진술 내용이 담겨 있는 검찰조서에 자신들의 진술이 그대로 기재된 것인지 등을 묻는 진정 성립 관련 질문조차 답변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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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은 삼성그룹 관계자들이 집단적, 조직적으로 증언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어서 증언거부권 행사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진정 성립을 인정하면 그 내용들이 바로 자기의 범죄성립을 인정하는 중요한 증거가 되므로 증언거부권 행사는 정당하다고 보았다. 형사상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진술거부권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보장된 권리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 발견을 원하는 국민은 피고인의 불출석과 증인들의 이어지는 침묵으로 헛바퀴 도는 듯한 재판에 답답하기만 하다.

박 전 대통령이 기소된 지 3개월째로 접어들면서 1심 재판은 반환점을 돌았다. 재판부는 주 4회 재판을 진행해 1심 구속 만료기한인 오는 10월16일까지 재판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때까지 재판이 끝나지 않으면 구속된 피고인을 석방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불출석과 증언거부로 1심 구속기간 만기 때까지 박 전 대통령 재판이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변호인단은 박 전 대통령의 건강상 이유, 방대한 기록 파악 등을 이유로 집중 심리에 난색을 표해 왔다. 변호인 접견 등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재판진행 속도를 늦추자고 요구하고 있다.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불출석카드를 꺼내든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사법 절차적 권리이고 기본권이니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다. 보통 피고인은 재판부에 밉보이는 행동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염려하여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처럼 하지 않는다고 하니 전략적이고 의도된 재판방해가 아닐까 의심해 볼 뿐이다.

그러나 불출석과 증언거부로 역사적인 재판이 방해받을 수는 없다. 형사소송법 제277조의2에 따라 피고인이 출석하지 아니하면 개정하지 못하는 경우에 구속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의한 인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적으로 피고인은 정해진 공판 기일에 출석 의무가 있고, 출석을 안 할 정당한 사유를 거동이 곤란한 정도로 보고 있다. 재판부가 피고인의 현재 상태가 형사소송법상의 ‘거동이 곤란할 정도의 신병’으로 볼 수 없다며 형사소송법 원칙대로 공판에 출석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어 재판은 다시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나 이 부회장이 뇌물수수와 공여 혐의를 부인하면서 재판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재판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를 판도라 상자를 발견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찾아낸, 박근혜 정부 민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문건 300여종을 언론에 공개하고 그중 일부를 특별검사 팀에 넘겼다는 것이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정황적 증거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특검의 압수수색을 거부했던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안보 등을 이유로 압수수색을 승인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범죄의 꼬리를 밟히지 않으려 그랬던 것 같다. 문건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언제 작성했는지 등을 확인하면 지금 진행 중인 국정농단 재판의 공소유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증거도 있을 것이고, 추가수사나 재수사의 필요성을 확인해주는 자료도 있을 것이다.

문건 발견 경위와 발표 의도,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증거수집의 적법절차 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지만 청와대 압수수색이 진행되었더라면 찾았을 문건들이다. 공간재배치 작업 도중 발견한 것이라니 기획된 청와대발 사정도 아니다. 우연히 발견했고, 발견자가 수사기관에 신고한 모양새니 특검과 검찰이 나서 진상을 규명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재판부가 재판을 통해 무엇이 실체적 진실인지 선언하면 된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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