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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시론] ‘코리아 패싱’ 위험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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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한국 주도 ‘베를린 구상’

김정은 화성-14 도발로 김빠지며

북한 문제는 강대국 외교 전쟁터 돼

‘코리아 패싱’ 회귀하지 않으려면

미국 주도 제재에 찬성하면서

북한 폭격은 용납하지 말아야

중앙일보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와 정상회담 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장소인 함부르크가 아니라 2000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한 독일 수도에서 ‘코리아 이니시에이팅’(한국 주도)의 첫 작품인 ‘베를린 구상’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베를린 구상’이 김대중 대통령 ‘베를린 선언’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려 했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은 많은 혁신적 선택들과,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쌓아 올린 대북정책의 장점을 이어받는다는 연속성이 결합된 좋은 대북 구상이다. ‘선택과 이어받기(choices and echoes)’는 정책 레짐 형성의 필수 요소다. 1964년 골드워터는 주류 공화당의 정책을 ‘이어받기’하지 않고 극우 보수정책을 ‘선택’함으로써 대선후보는 될 수 있었으나, 본선에서 ‘선택’과 ‘이어받기’를 절충하지 않음으로써 참패했다.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좋은 정책은 이어받으면서 그 정책 레짐이 벽에 부딪힐 때는 새로운 혁신적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고 정치학자들은 말한다.

베를린 구상의 혁신적 선택이라고 하면 먼저 미국과 한국에서 장기간 지속해온 바 ‘북한은 조만간 붕괴한다’는 ‘북한 체제 붕괴론’을 부정했다는 점이다. 또 북한 체제를 보장하고 흡수통일론을 배제함으로써 인위적 북한 체제 붕괴 시도를 반대한다는 것을 명시해 김정은에게 ‘통일대박론’ 또는 ‘흡수통일’의 위험 부담 없이 한국과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중앙일보

둘째, ‘북한 비핵화를 위한 포괄적 해결책 모색’을 통해 문재인 방식의 ‘투 트랙(Two Track)’ 정책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의 투 트랙은 2005년 9·19과 2007년 2·13의 6자회담 합의, 지난해 2월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제시한 투 트랙(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의 병행 추진)의 연장선에 있다. 문 대통령 구상이 혁신적인 이유는 북한 체제 보장을 통해 안보 딜레마를 해소함과 동시에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를 통해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구체적 실행 구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북한 비핵화를 북한 핵동결이나 잠정 중단(moratorium)이 아니라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dismantling)’로 정의하고 있어 김정은이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과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북한의 핵 수준은 이미 고도화·정밀화·경량화돼 ‘폐기’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최선책은 북한 핵을 동결시킨 뒤 점진적으로 남북, 북·미 관계를 개선해 북한이 핵을 스스로 폐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현재 실현 가능한 최선의 방안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7월 6일 한국 주도 대북정책의 첫 작품으로 베를린 구상을 발표하기 이틀 전 김정은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는 선제적 응수로 문 대통령의 대북 구상의 김을 빼버렸다. 김정은이 쏘아올린 화성-14형은 사정거리 8000㎞로 미국 알래스카에 닿을 수 있는 미사일이다. ICBM 발사는 기본적으로 미국을 겨냥한 김정은의 도발이다. 김정은은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는 김정일의 유훈을 어김없이 실행하고 있다. 김정은은 한국의 대북 주도를 인정하지 않고 미국과 양자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도전장을 내었다. 자연히 북한 문제는 한국 주도가 아니라 미·중, 미·러, 미·중·러 간의 강대국 외교의 전장이 되고 있다. 실제 미사일 발사 후 미국 재무부를 비롯한 강경파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비롯한 초강력 추가 제재를 시도했으나 중국 시진핑은 “북한은 중국의 혈맹”이라는 말로 미국의 제재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푸틴의 러시아는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좌절시켰다.

문 대통령의 코리아 이니시에이팅은 시작하자마자 다시 강대국 외교(plurilateralism)로 돌아갈 조짐을 보이면서 설 자리가 넓지 않게 되는 형상이다. 그러나 다시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문 대통령은 미국 주도의 제재에 찬성하면서도 ‘제재를 위한 제재’는 반대하고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제재여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 중국과 러시아 때문에 대북제재는 이제까지 작동한 적이 없고 앞으로 작동할 가능성은 더욱 낮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 이어 북한 폭격 옵션은 한반도를 다시 전쟁터로 만들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허용할 수 없으며, 평화적인 북한 비핵화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트럼프를 설득해야 한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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