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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5 (토)

'우병우 캐비닛' 연 청와대… 11일간 함구하다 "생중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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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중요 발표라며 '박근혜 민정수석실' 문건 300여건 공개]

- 삼성 경영권 승계 관련

'삼성 도와줄 건 도와주면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 지원' 언급

이재용 측은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생명 지주사는 승계와 무관"

-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문화계 건전화·문체부 간부 검증'

- 故김영한 前수석 메모도 공개

'간첩 무죄→특별법 입법토록' 김기춘 前실장이 검토 지시한 듯

청와대는 14일 민정비서관실 사무실 캐비닛에서 발견된 박근혜 정부 청와대 문건은 총 300종 정도라고 밝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문건, 장관 후보자 인사 자료, 지방선거 판세 분석 등이 들어 있다고 했지만 핵심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지난 정부 청와대가 지원했다는 부분이었다. 청와대는 이 자료들이 지난 3일 발견됐다고 했다. 그러나 11일간 소수의 참모만 내용을 공유하며 철저히 함구해 오다 이날 긴급 기자회견 형식으로 발표했다.

생중계 부탁하며 기습 발표

청와대는 이날 오후 2시 30분쯤 "박수현 대변인이 오후 3시에 브리핑을 할 예정"이라고 공지했다. "발표 내용은 대변인 발표 전까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중요한 발표 내용이기 때문에 방송사들은 생중계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방송사 생중계를 요청할 경우 무엇과 관련된 내용이라는 정도는 알려주는 관례에 비춰 보면 이례적이었다. 박 대변인이 청와대 춘추관에 도착하기 몇 분 전에야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작성한 300여 건의 각종 자료가 발견됐다"는 말이 비공식적으로 흘러나왔다.

조선일보

故김영한 메모 공개 -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14일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메모를 들어 보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이 작성한 이 메모는 세월호 유병언 금고지기 김혜경, 통합진보당 해산, 세월호 대리기사 폭행 등 내용이 담겨 있다. 청와대는“삼성 관련 메모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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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지난 5일 주요 20개국(G20) 회의차 독일로 출국하기 전에 해당 내용을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3일 (해당 문건들을) 발견한 이래 민감한 부분들이 있어서 법리적 검토가 필요했다"며 "그동안 해외 순방 기간이 포함됐고 많은 (청와대) 인력도 해외에 나갔다 왔기 때문에 발표 시점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야당들은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고 했다.

◇'삼성 도와줄 건 도와주자'

청와대는 이날 문건들 발견 사실을 공개하면서 내용은 일부만 공개했다. 그중 가장 먼저 말한 것이 삼성 승계 관련 부분이었다. 청와대는 문건에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삼성의 당면 과제 해결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이라고 적혀 있다고 밝혔다. 또 '경제 민주화 관련 법안 대응, 금산분리 규제 완화 지원'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했다.

삼성의 경영 승계와 관련한 가장 큰 현안은 2015년 7월 이뤄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었다. 박영수 특검팀은 올 초 박 전 대통령이 삼성 그룹 계열사 합병이 성사되도록 도운 대가로 삼성이 최순실씨 측에 433억원의 뇌물을 줬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합병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 측은 "합병은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 개선 등을 위해 이뤄진 것으로 경영권 승계와는 관련 없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선 메모에 적힌 '금산분리 규제 완화 지원'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을 가리킨다고 본다.

조선일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송되는 '문건'들 - 정부 관계자들이 14일 전임 정부 민정수석실 캐비닛에서 발견한 300여건의 문건을 대통령기록관으로 옮기고 있다. 2007년 제정된‘대통령기록물법’은 기록물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산하 대통령기록관으로 옮긴 뒤 열람 신청 절차 등을 밟도록 하고 있다. /청와대


특검팀은 삼성이 작년 초부터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을 본격 추진한 것은 이 부회장의 그룹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의도가 크다고 봤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가 되면 금산(金産) 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해야 하는 등 절차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특검은 청와대가 이 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를 압박해 삼성 측의 편의를 봐주려 했고, 이 역시 삼성이 최씨 측에 건넨 433억원 뇌물에 대한 대가라고 판단했다. 이에 삼성 측은 "이 부회장 등 대주주 일가의 삼성생명 지분은 과반인 52%여서 지배력 강화를 위해 금융지주사 전환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메모 내용들은 검찰과 특검이 기소한 내용에 거의 다 포함돼 있어 큰 의미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경제수석실뿐 아니라 민정수석실까지 나서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도왔다는 정황을 뒷받침하는 물증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도 언급

청와대는 민정수석실 작성 문건에 '문화 예술계 건전화, 건전 보수권을 국정 우군으로 활용' '문체부 국·실장 전원 검증 대상' 등도 있다고 밝혔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의 명단을 만들어 불이익을 줬다는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은 박 전 대통령이 김기춘 전 실장에게 지시했으며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실, 문화체육관광부 순으로 지시가 하달됐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가 발견한 문건에 따르자면, 민정수석실도 이에 개입했다는 것이 된다.

청와대는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자필 메모 1장도 언론에 공개했다. 메모 내용 중에는 '장(長)'자 아래에 적힌 내용이 눈에 띈다.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 지시 사항을 메모한 것이란 추정이 나왔었다. 메모에는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이란 내용과 함께 '차제 정보·수사 협업으로 특별형사법 입법토록→안보 공고히'라고 돼 있다. 간첩 사건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일자 간첩 수사 강화를 위한 입법 방안 마련을 검토하라는 뜻으로 추정된다. 메모에는 '대리기사-남부고발-철저수사 지휘 다그치도록'이란 내용도 있다. 당시 세월호 유족과 김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연루된 대리기사 폭행 사건의 수사를 독려하라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6월 지방선거 초반 판세 및 전망'이란 제목의 문건도 발견됐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 밖에 '전경련 부회장 오찬 관련' '경제입법 독소조항 개선 방안'이라는 문건과 2013년 1월 생산된 이명박 정부 시절 자료 1건도 발견됐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청와대는 이런 문건들의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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