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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매경춘추] 소통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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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여 년 전 어느 신문 칼럼에서 읽은 이야기를 오랫동안 인생의 좌우명처럼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다.

옛날 페르시아에 아주 훌륭한 임금이 있었는데, 50년 긴 세월 나라를 잘 다스리다 어느덧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 왕은 신하들에게 자신의 치세 50년을 정리하는 저술 작업을 지시했고, 당대의 석학들이 모여 백과사전 분량의 책을 지어 바쳤다. 훌륭한 저술이라고 칭찬한 임금은 일반 백성들이 읽기 쉽게 분량을 대폭 줄이라고 했다. 그래서 백과사전 한 질이 한 권으로 줄고, 다시 한 페이지로, 궁극엔 단 한 문장으로 줄어들었다. 임금은 매우 흡족해 했는데, 그 단 한 줄의 글귀가 바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경구였다.

그 칼럼은 여기까지였지만 나는 그 이후에도 두고두고 그 뜻을 곱씹어 내 나름의 세 가지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우선, 스스로를 채찍질하라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무엇이든 가치 있는 것을 가지려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싶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승진하고 싶으면 열심히 일하고 좋은 아이디어도 많이 내야 한다. 맘에 드는 이성과 사귀려면 상대의 마음을 끌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져야 한다.

두 번째 의미는 마음을 다스리라는 뜻이다. 노력하지 않은 결과를 탐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와 같은 것이니 욕심을 버려야 한다. 내 것이 아닌 타인의 정당한 성취에도 시기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재물은 소중한 것이니 누군가 공짜로 재물을 주겠다면 반드시 원하는 바가 있을 것이요 그 재물에 욕심을 내면 반드시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세 번째 의미가 바로 세상 사는 법칙, 즉 소통의 원리다. 공짜가 없으니 받은 것이 있으면 그에 합당한 것을 내줘야 한다. 누군가에게 내 주장을 들으라 했으면 나 또한 그의 주장을 들어줘야 공평하다. 이처럼 서로 주고받는 것을 소통이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현실적인 셈법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오래가고 안정적인 관계가 되려면 반드시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줄 수 있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표현하기보다는 어른들의 훈시와 가르침을 받아 적고 외우는 것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소통이란 진정 어려운 단어가 되어버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상대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상대의 의견도 존중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소통이고 더불어 사는 좋은 가정, 회사, 국가를 만들어 주는 기본 원리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박상우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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