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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세상읽기] 혁신은 자유와 경쟁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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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성장궤도로 복귀시키는 것은 정부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러 공약과 논의가 있었지만 현실에서 이를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숙제이다.

그런데 여러 선진국 사례에서 관찰되듯이 성숙한 경제에서 성장을 이끌어내는 근본 원동력은 혁신이다. 혁신 없이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도 없고 생산성 향상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혁신 없는 성장이 장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내생적 성장' 같은 경제이론과 실증분석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현재까지는, 어떤 방식으로 경제 전반에 혁신을 만들어낼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최근에는 가격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 등 혁신을 저해할 수 있는 정책 논의도 있다.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2년 전인 1995년 저명 경제학 학술지에 '동아시아 성장 경험의 통계적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알윈 영 런던경제대학 교수의 연구가 발표된다. 그 연구에 따르면 동아시아 경제성장의 원천을 엄밀하게 분석할 때 대부분 성과가 자본투입에 의존한 반면 생산성 향상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패턴을 유지하면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의 성장은 곧 한계에 도달하고 경제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외환위기 발생을 직접 예측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 및 노동 투입에 의존하는 성장 방식을 따르던 우리 경제에 가해진 경고로 해석됐고 곧 외환위기가 실제 발생하며 주목받았다. 생산성 향상과 수익성 개선 없이 부채에 의존하는 대규모 투자로 한국의 기업 자금조달 및 거시경제 운영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국제금융계에서 나오던 때라 반향은 컸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경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노동 투입을 넘어서는 경제성장을 지향하고 한국 경제의 활로를 찾기 위한 혁신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장경제의 근간이기도 한 자유와 건강한 경쟁의 활성화이다. 환언하면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시장경제를 못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자유와 경쟁이 충분하지 않아도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을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 이후 정부의 강제 개입과 자원 동원에 기반했던 소비에트연방의 경제성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1950년대 알렉산더 게르셴크론 하버드대학 교수가 밝힌 것처럼 소련이 사회주의 혁명 이후 보였던 성장은 낙후된 경제체제에서 일시적으로 가능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제한적이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우리 경제는 1970년대식 자원 동원으로 성장을 달성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있고 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요 창출이 절실하며, 결국 개인의 창의력이 자유롭게 발휘되고 그 결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경제 운영방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장경제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한 원천은 바로 가격 시스템이라는 사실이다. 가격은 무엇인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수요자와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공급자를 경쟁이라는 방법을 통해 연결시켜 주기 때문에,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낸다는 혁신의 기본 개념에 충실한 자원배분 메커니즘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경제에서는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가 아니면, 가격 자체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해야 하고 그것이 혁신의 출발점이다.

다만 정부 개입이 합리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불공정한 행위로 경쟁이 제한되고 있을 때이다. 그런데 이때도 직접적인 가격 개입과 통제보다는 불공정한 경쟁제한 행위를 못 하도록 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핵심이다. 취약계층은 가격통제가 아니라 별도 지원을 통해 기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혁신 자본주의의 동력인 가격 자체를 직접 통제하려 한다면, 민간에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하기 위한 연구와 노력이 저하되며 혁신을 통한 경제 성장은 요원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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