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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매경포럼] 트럼프가 묻는다. 너의 친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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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일본에 출장갈 때마다 청명한 하늘에 감탄하곤 한다. 일본에도 중국발 황사는 불어온다. 그곳에선 상층권의 먼지란 의미에서 '고사(高沙)'라고 부른다. 다만 그 정도가 미약해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게 우리와 차이다. 한국과 일본은 황사 농도만큼 차이 나는 게 또 있다. 중국을 이웃으로 둔 것은 같은데 그 숙명의 무게가 크게 다르다. 일본은 유사 이래 자신의 군주를 '천황'이라 불렀다. 중화주의가 지배하는 질서에서 '황(皇)'은 중국의 임금만이 쓸 수 있는 호칭이었다. 일본은 아랑곳없이 칭황(稱皇)을 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대륙과 일본을 바다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규슈와 한반도 사이에 가로놓인 대한해협은 최단거리 193㎞로 영불해협보다 5배 길다. 동중국해를 기준으로 한 중국과 일본 사이 직선거리는 804㎞. 황사가 현해탄을 지나며 소멸하는 것처럼 중국의 패권도 바다 앞에선 무력했다.

일본 본토가 대륙세력에 의해 실질적인 위협을 당한 것은 두 차례 몽골 침공뿐이었다. 1274년과 1279년 원정에서 몽골은 일본의 끈질긴 저항과 태풍을 뚫지 못했다. 일본은 대륙이 어찌해 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 해군과 공군의 방어망을 뚫고 열도에 육군을 전개시킬 능력이 중국에는 없다. 일본을 칠 유일한 방법은 핵미사일을 쏘는 것이다. 미국과 세계대전을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중국에서 한반도를 넘어오는 길엔 장애물이랄 것이 없다. 압록강은 말을 타고 건널 수 있는 강이다. 6·25 때 소총 한 자루도 제대로 못 갖춘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왔을 때 우리는 혼비백산해 달아나고 또 달아났다. 중국과 육로로 이어져 있다는 숙명의 실존적 의미는 그런 것이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중국의 군사력을 의식하지 않았던 시기는 한국전쟁 휴전 이후 지금까지 64년이 유일하다. 섬처럼 중국과 분리된 남한은 미·일 해양동맹의 한 축이 되어 번영했다. 중국은 해양세력의 대륙 전개를 1차 저지할 북한을 어르고 달래지 않을 수 없었다. 주한미군의 존재가 없었다면 북·중 국경이 지금처럼 평화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국과 국경을 맞닿은 나라들은 고단하다. 1962년과 1979년 각각 중국과 전쟁을 치르고 지금도 국경분쟁으로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인도와 베트남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이 지역패권에 근접할수록 이들 나라의 불안도 커진다.

30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는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이다. 그 표현이 외교적 수사로 포장되든, 트럼프식 직설화법이든 미국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할 질문의 요체는 이게 아닐까. "한국의 친구는 누구인가. 미국인가, 중국인가." 문 대통령은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갖고 회담장에 나가야 한다. 한미 관계는 '아메리카 퍼스트'의 트럼프 정부 출범과 사드 갈등으로 거대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한미동맹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같은 수사로 대강 때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트럼프는 "그렇다면 행동으로 보이라"고 다그칠지 모른다.

국제정치학에서 현실주의 이론을 대표하는 존 미어샤이머는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서 "중국 이웃국가들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미국과 힘을 합쳐 중국에 대항하는 균형을 이룰 것인가 혹은 부상하는 중국에 편승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이웃 국가가 미국이 주도하는 균형을 택할 경우 중국은 그들과의 경제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위협하고 번영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사드 이후 우리가 실제 봉착한 상황이다. '한국의 진정한 친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구하는 작업은 우리가 누구와 친구였을 때 가장 안전하고 번영했는지 역사를 돌아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중국인가, 미국인가. 답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따져볼 것은 그 조건이 지금도 유효한가다. 미어샤이머는 이렇게 말한다. "경제적인 고려와 정치적 고려가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 국가안보가 경제적 고려를 압도한다. 이웃의 강한 나라에 편승할 때 막강한 이웃나라는 더욱 강해지고 결국은 더욱 위험한 나라가 된다." 나는 이 부분에 미어샤이머와 의견을 같이한다. 문 대통령은 어떨지 모르겠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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