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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기고] 아동의 참여로 만드는 `진짜` 아동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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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좋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전까지 아동정책은 아동을 대상으로 '이미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아동정책을 위해 아동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아동들이 의견을 내려 해도 '애가 뭘 알아' 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아동 의견을 듣고 아동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갈 대통령을 선출하고자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미만 8600여 명의 아동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개선되어야 하는 것과 시급히 필요한 것'을 모아 '대한민국 아동이 제안하는 아동정책공약 보고서'를 만들었다. 아동들이 보내 온 1만여 개의 제안을 살펴보니 우리나라에서 아동으로 산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숨 막히는 입시경쟁, 각종 폭력·범죄·사고로부터의 불안, 놀이시간과 공간의 부족, 부당한 아르바이트 환경, 점점 더 소외되고 있는 빈곤과 배제,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괴로움 등 교육부터 안전, 환경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 고통들이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를 통해 아동 문제 전문가는 아동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다.

이 제안들 중 12.6%로 가장 높았던 것은 바로 교육시간 축소에 대한 요구였고, 사교육 축소(8.6%), 시험 축소(8.3%), 예체능 수업 확대(7.3%) 등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주당 공부시간이 60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길고, 사교육과 방과후 수업은 평균 9세부터 시작해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다. 이와 같은 '학습노동'으로 인한 시험이나 성적스트레스는 OECD 평균을 상회하는데 지금까지 우리 어른들은 아동들의 고통을 외면해 왔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초·중·고교생 1000명을 대상으로 생활시간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참여 초등학생의 63.5%가 권장 공부시간보다 과다하게 공부하고 있었다. 이외에 학년이 높아질수록 '신체운동을 위한 시간확보가 어렵다'는 답변이 높았다. 평소 잠을 충분히 잔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항목에서도 고등학생은 10명 중 6명(63.6%)이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아동 대부분이 학년이 높아지면서 운동하고 뛰어노는 시간이 현격히 적어지고 공부시간이 훨씬 더 길어지는 불균형한 삶을 살고 있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이러한 현상을 당연하게 본다.

혹자는 이러한 학구열이 우리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특정 활동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면 다른 활동에 배분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도한 학업과 입시 준비로 필수적인 수면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적정한 수준의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은 자명하다. 실제 생활시간을 균형적으로 사용하는 아동들이 불균형한 아동들에 비하여 자아존중감, 생활만족도, 주관적 삶의 수준이 높게 나타난 반면 우울감 및 스트레스는 더 낮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아동의 건강한 발달은 하루 24시간 동안 아동의 고른 활동에서 비롯된다. 공부에만 매몰된 불균형적인 생활이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가족과 사회에 촉구하는 일은 매우 시급하다. 균형 생활시간은 아동 발달에 중요한 요인인 만큼 새 정부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변화시키려는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동은 전체 인구의 약 20%에 불과하지만 우리 미래의 온전한 100%다. 새 정부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아동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당사자인 아동들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아동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아동정책은 아동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끔찍한 말이 있다. 이제는 아동의 피가 아니라 아동의 참여를 통한 '진짜' 아동정책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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