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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라이프 토크] "자연에 뿌리 내린 삶… 텃밭 가꿔 차린 채식밥상이 기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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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부엌' 출간한 김미수씨

유기농으로 채소 키워 자급자족

하수 재사용하고 중고 물품 사고

자연 그대로 되돌려 주려는 노력

남편 권유로 냉장고 없는 생활 중

지하 보관한 식재료, 몇달도 싱싱

도심에선 베란다 활용해보세요

지난 봄, 늘 넓디넓은 팔을 벌려 한없이 받아주기만 할 것 같은 자연이 드디어 선전포고를 날렸다. 그렇게 이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외면하는 순간, 우리에게 찾아온 건 재앙이었다. 매일 아침,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켰다. 아, 어제에 이어 오늘도 미세 먼지 매우 나쁨. 아침이면 창문부터 열고 집 안에 한껏 새 공기를 들이는 환기가 새삼 그리웠다. 실내 공기가 탁해질까봐 불을 피워 부지런하게 아침상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마저 자연스레 사라졌다.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마냥 크게 심호흡을 하고 집을 나섰다. 마스크 안에서 가족은 서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인사를 나눴다. '부디,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하기를.'

그런데 이런 현상들이 인간 탐욕의 결과인가를 두고 논쟁을 한창 벌이고 있을 때, 책임소재나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보다 개선을 위한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힘줘 말하는 이가 있다. "간혹 혼자서 세상을 위해 무엇을 바꿀 수 있겠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작가 존 로빈스는 이렇게 말했다. 새벽을 일깨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해서 완벽한 인간이 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완벽하지 않은 그 어떤 시도도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얼마 전 신간 '생태부엌'을 출간한 김미수씨와 그녀의 남편 독일인 토양생태학자 다니엘이 바로 그이다. 미세 먼지 수치가 정점을 찍던 어느 날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신간을 읽다가, 내친김에 그 삶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봤다.

조선일보

독일에서 ‘생태적 삶’을 실천하는 김미수 씨와 독일인 남편 다니엘 씨가 자신의 집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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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을 발간하면서 “여유가 되시면 사 보셔도 좋고, 여럿이 돌려 보시면 더 좋고”라고 말했다. 이 역시 생태적 삶의 일환인가?

“초판 인쇄한 책이 다 팔리고 재판 혹은 그 이상 갈 정도로 오래오래 내 책이 흥행하면 좋겠다는 소망은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쓴 책 한 권 한 권이 ‘두루두루 널리 읽히는’ 책 본연의 본분을 다하고, 책다운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더 바란다. 어차피 종이로 인쇄를 해야 하는 책이라면, 그 작은 책 한 권에 이것저것 유용한 정보를 많이 실고 싶기도 했다.”

―지리산 밑자락 구례에서 나고 자라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독일 소도시 할레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된 사연은 무엇인가?

“대학에서 미술작품을 만든다는 미명 하에 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석고 덩어리와 플라스틱 조각상 등을 만들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기 말마다 미대 공터 쓰레기장에 쌓이는 온갖 잡다한 물품들을 보았고, 조소를 전공한 나는 작품을 만들 때마다 ‘최소한 쓰레기 양산하지 않기’를 내 작업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그러다 우연히 대학 때 독일 생태센터라는 연합단체에서 주최한 국제 워크캠프에 참가했고, 생태센터 구성 단체 중 하나였던 퍼머컬처 숲 텃밭 프로젝트에서 인턴십 중이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 다니엘에 대한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다니엘은 어려서부터 아들들에게 텃밭 일을 가르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때부터 유기농과 텃밭 농사 등에 관한 책을 자발적으로 찾아 읽기 시작했고 자전거를 타고 인근 자연을 탐방하면서 단순히 유기적으로 농사짓기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텃밭에 집중적으로 자연멀칭(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땅을 짚 등 자연 재료로 덮는 일)을 하는 여러 대안을 시도해보며 경험을 쌓았고 현재는 독일에서 생태토양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남편의 권유로 냉장고 없이 살아보기 중이라던데 그게 가능한가?

“독일에서 처음 살았던 에베르스발데에서는 근처에 유기농 농부가 많아 가을 수확철에 감자·당근 같은 기본 채소를 여러 포대씩 한꺼번에 사서 이듬해 봄까지 두고 먹었다. 감자는 쌓아놓고, 당근은 10L짜리 양동이에 모래를 담아 파묻어 보관했는데 봄이 올 때까지 저장했다. 장을 자주 보러 다니면 사실 한 여름에도 서늘한 지하 저장 공간을 이용해 냉장고 없이 살 수 있었다. 어릴 적 지리산자락 아래 살았던 경험 때문인지 자연에 뿌리를 둔 생활이 의미있게 다가왔고, 도전적인 재미도 느꼈다. 이후 직접 만든 허브 가루치약을 사용하고, 하수를 모아 화장실 물을 내리고, 가능한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하고, 옷과 전자기기는 중고를 우선적으로 구입하는 등 결혼 후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생태적 살기를 ‘의식적으로’ 고민했다.”

―한국은 아파트 문화라 지하에 서늘한 저장 공간이 없다. 냉장고 없이 살기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초봄·늦가을·겨울에 채소와 과일을 베란다 응달에 두고 먹기부터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과일이나 채소 등은 납작한 상자를 여러 개 구해다 서로 눌리지 않도록 한 층으로 담아 보관하면 경우에 따라 오히려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보다 오래토록 싱싱하다. 밥이나 국 등의 음식은 뜨거울 때 유리병에 넣고 밀봉해 서늘한 곳에 두고 먹으면 좋다. 여러 날 먹을 요량으로 밥과 국을 넉넉하게 만든 후, 남은 것을 냉장보관하지 말고 한 끼 분량에 맞는 크기의 유리병에 병조림해 두면 냉장보관 없이도 계절에 따라 사나흘 정도는 거뜬하게 문제없이 먹을 수 있다.”

―일상 중에 생태적 살기를 시도해볼 만한 것이 또 있다면?

“현대 사회에서 사용하는 전자기기 가짓수를 극도로 줄이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필요하면 써야 한다. 온갖 잡다한 기계의 사용을 줄이고 생활을 단순하게 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전반적으로 생활에 좀 더 주의가 필요하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드라이기를 쓰거나 핸드폰을 충전하고 난 다음 전선 콘센트를 뽑지 않고 그대로 여러 날 방치해두는 경우가 많다.”

―생태부엌의 정점은 채식이라고 하는데, 부부 모두 채식주의자인가?

“텃밭을 일구고 먹을거리를 수확해서 건강하고 맛있는 채식피크닉을 싸고, 채식밥상을 매일 차려 먹는 것은 우리 부부의 삶에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다. 이 기쁨은 기꺼이 화장실 배출물과 부엌 식재료 찌꺼기 등을 모아 퇴비를 만들어 다시 텃밭으로 되돌려 주는 생태적인 순환의 고리를 지속시켜 나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텃밭 덕에 우리 부부는 자연과 교감하고 땅에 뿌리를 내린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살고 있다.”

―워크숍·강의 등 행사가 많다고 들었다. 현재 독일에서 부부의 하루 일과는 어떠한가?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것은?

“자연멀칭 등을 이용한 생태적인 농경, 토양 이용에 관한 강연을 주로 다닌다. 초청 강연은 취미농부와 같은 일반 시민부터 전문 농업인까지 다양한 그룹을 대상으로 하며, 환경단체·생태 마을·농업 관련 회사 등에서 주최하는 행사도 있다. 채식 관련해서는 다니엘과 공동 강의를 하기도 한다. 앞으로 생태적으로 자급자족하는 모델 프로젝트를 실현해 일상에서도 생태적인 삶, 지속가능한 농사를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다른 기관 및 단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생태적인 삶의 방법들을 제 3세계 국가에서 실현하는 좀 더 넓은 차원의 프로젝트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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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및 부엌 찌꺼기, 잔디 깎은 것과 낙엽 등을 모아 퇴비를 쌓고 잘 숙성시켜 다시 텃밭으로 돌려주는 작업 중인 남편 다니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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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사용하지 않고 저장 창고인 켈러에 신문지와 유리병을 이용해 각종 채소를 보관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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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사용하지 않고 저장 창고인 켈러에 신문지와 유리병을 이용해 각종 채소를 보관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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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이 계절에 마음껏 즐기는 야생 허브 샐러드./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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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여정 라이프토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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