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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Citylife 제585호 (17.07.04일자)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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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당신, 타이레놀을 먹어라 <울트라 소셜>

시티라이프

장대익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다윈의 정원> 3부작을 통해 진화심리학을 대중에게 보급하는 데 앞장서왔다. 신간에서 그가 제시하는 화두는 ‘인간의 초사회성(Ultra social)’이다.

우리가 하는 일, 정치·경제·종교·예술 활동까지도 모든 것의 근본적 힘은 바로 사람들과 관심사를 일치시키는 ‘사회적 지능’에서 온다. 사회성은 양면성을 지녔다. 공감, 지식 전수, 협력, 신뢰, 배려, 스토리텔링 능력은 모두 사회성에서 비롯됐다. 동시에 차별, 집단 따돌림, 편견, 복종, 불평등 또한 사회성에 뿌리를 둔다.

사회성의 비밀을 풀게 된 건 우연한 발견 덕분이다. 이탈리아 파르마대의 신경과학 연구팀이 원숭이의 뇌파를 연구하다가 거울신경세포를 발견했다. 이 세포로 인해 남이 하는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 내가 실제로 그 행동을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 뇌 속에서 벌어진다.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골을 넣을 때 내가 축구를 하는 것처럼 느끼고, 타인의 고통을 보는 것만으로 자극을 받는 ‘역지사지’의 관점 전환 능력은 인간에게만 장착된 신무기다.

게다가 공감능력은 진화한다. 인간은 공동으로 사냥하고 먹이를 나누고 함께 서식지를 지키는 집단생활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목숨을 지키고, 식량을 조달하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이 효율적 삶은 한편으로 단점도 가져왔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마음을 꿰뚫고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음 읽기는 인간만의 사회적 능력이다. 침팬지는 달을 가리키면 달이 아니라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본다. 타인의 생각과 의도를 읽어내는 복잡한 추론 과정은 집단생활의 매우 중요한 ‘생존 조건’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가 서로의 거울신경세포인 셈이다.

마케팅 측면에서 인간의 사회성은 비상식적인 결과를 도출하기도 한다. 뉴욕의 뉴발란스 매장에는 메이드 인 USA 진열대가 따로 설치돼 있다. 인건비가 비싼 만큼 이 운동화들은 20달러 이상 비싼데도 불티나게 팔린다. 전기차 업계에서는 가격을 평균보다 올리거나 배터리 충전을 어렵게 하는 등 운행을 힘들게 해야 판매량이 뛴다. 이는 자신의 이타적 소비를 남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본능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평판의 동물인 인간에게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본성을 거스르는 덕목인 셈이다.

사회성이 만들어내는 고통에 관한 연구도 소개한다. 신체적 고통과, 타인에게 소외당했을 때의 사회적 고통을 뇌는 구별하지 않는다. 뇌의 배측 전대상피질에서 감지하는 둘의 고통은 본질적으로 같다. 응용하면 이런 실험이 가능하다. 실연을 당하거나, 직장에서 소외감을 느꼈을 때 마음이 아프다면 타이레놀을 복용해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는 줄어들 것이다. 이를 보면 왕따 피해자들의 고통은 말 그대로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 있었다는 뜻이 된다. 사회적 고통을 유발하는 언어폭력이나 집단 따돌림은 범죄로 취급해야 마땅하다. 이 책은 말한다. “외롭지 않은 자, 그 사람은 비정상이다.”

▶글쓰기로 ‘빅브라더’와 싸운 조지 오웰 <조지 오웰, 시대의 작가로 산다는 것>

시티라이프

스테판 말테르 지음/ 제3의공간 펴냄


조지 오웰(1903~1950)은 4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어떤 전기도 쓰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프랑스 클레르몽페랑대 현대문학 교수인 스테판 말테르는 이 유언을 어기고 평전을 썼다.

1903년 인도 동북쪽 벵골에 위치한 모티하리에서 훗날 조지 오웰로 불리게 될 에릭 아서가 태어났다. 그는 영국 최고의 명문 이튼학교를 졸업한 뒤 경찰이 되어 버마로 발령받았다. 그곳에서 제국주의 시스템의 톱니바퀴로서의 자신을 발견했다. 식민지의 처참한 실상을 본 일은 평생 그의 삶을 좌우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경찰 옷을 벗고 스물여섯에 파리로 건너가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생계를 위해서 접시닦이, 서점 직원, 막장 광부, 농사꾼, 잡화상, 종군기자 등을 전전했다. 평생 글 쓰는 기계처럼 생계를 위해 칼럼을 썼고, 그런 이유로 소설 작품은 많이 남기지 못했다. 폐결핵과 싸우면서 그는 <1984>에 매달렸고, “이 빌어먹을 소설을 끝내는 것”을 마지막 목표로 삼았지만, 발표한 이듬해인 1950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저자는 조지 오웰의 글쓰기를 전체주의와 파시즘의 위협 속에서 자유와 진실 그리고 인간성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적 행위로서의 글쓰기’로 평가한다. “그에게 모든 글쓰기는 프로파간다였으며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 ‘빅브라더’와의 싸움이었는지도 모른다.”

[글 김슬기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85호 (17.07.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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