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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박 前대통령에 비선 존재 묻자 '비참하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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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김성우 前수석 진술 공개… 작년 10월 12일 청와대선 무슨 일이]

안종범·우병우 등 4명 대책 회의

"최순실 존재 알리자 했더니 박 前대통령 아무말도 안해"

개헌 연설 '신의 한 수'라 했지만 태블릿PC 보도 터지면서 수습 불가한 상황으로

"'비선 실세'가 정말 있습니까?" "비참합니다…."

'최순실 게이트' 의혹이 한창 커지던 지난해 10월 12일 청와대에서 박근혜(65) 대통령과 핵심 수석들이 가진 대책회의 장면이 27일 서울중앙지법 법정에서 공개됐다. 검찰은 김성우(57)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특검에서 조사받을 때 작성된 진술조서를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공개했다.

진술조서를 보면 대책회의는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이 대통령 면담을 요청해 열리게 됐다. 청와대 본관 회의실에서 오후 1시쯤부터 1시간가량 진행된 회의에는 대통령과 안 수석, 김 수석, 우병우 민정수석 등 4명만 참석했다.

당시는 청와대가 대기업을 상대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774억원을 강제 모금했고, 이 과정에 '비선 실세' 최순실(61)씨가 개입했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검찰이 이미 수사에 착수한 때였다. 김 수석은 "각종 의혹에 대해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밝힐지가 회의의 최대 안건이었다"고 했다.

◇靑 대책회의서 '모르쇠' 기조 세워

김 수석은 회의 직전 안 수석에게 박 대통령이 2015년 7월과 2016년 2월 대기업 회장들과 독대(獨對)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수석들이 회의에서 독대 경위에 대해 묻자 박 대통령은 "기업인들과 만나 윈윈(win-win)하는 자리를 만들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 김 수석이 "비선 실세가 정말 있느냐"고 묻자 박 대통령은 "비참하다"고 답하더라는 것이다. 김 수석은 이 대답을 박 대통령이 최씨의 존재를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김 수석은 이어 "(최씨가) 호가호위한 것이냐"고 물었고 박 대통령은 "그 사람이 한 일에 대해선 모른다"고 답한 것으로 조서에 쓰여 있다. 수석들이 "최씨의 존재를 국민에게 밝히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박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김 수석은 진술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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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대책회의 다음 주에 열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내놓을 입장도 수석들과 논의했다. 그 결과 청와대는 재단 모금과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고, 전경련 주도로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후원했다는 식으로 입장을 표명하기로 정리됐다고 김 수석은 진술했다. 안종범 수석은 이 같은 내용을 고스란히 업무 수첩에 메모했고, 이를 토대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참고할 문건을 만들었다. 우병우 수석은 이 문건에 '최씨는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법적 검토를 덧붙인 것으로 특검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 기조에 따라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0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두 재단 설립은 전경련이 나서고 기업들이 동의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인 21일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는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가 "최씨가 대통령과 아는 사이인 것은 맞지만 절친하게 지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개헌(改憲) 카드, '신의 한 수'인 줄 알았지만…

청와대의 거듭된 해명에도 의혹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자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4일 오전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에 헌법 개정을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깜짝 발표'에 모든 뉴스의 초점은 '최순실 게이트'에서 '개헌 논의'로 옮겨가는 듯했다. 이에 대해 김 수석은 특검 조사에서 "개헌을 발표하자 (모든 언론이) 개헌을 쫓아가서 '신의 한 수'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JTBC가 최씨의 태블릿 PC에 대통령 연설문을 비롯한 청와대 문건이 들어 있었다고 보도하면서 상황이 또 크게 바뀌었다. 김 수석은 "그날 저녁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빗발쳐 JTBC에 보도가 난 사실을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다음 날 대통령은 1차 대국민 사과를 했다.

[신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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