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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중앙시평] 트럼프와 거래해야 할 ‘대한민국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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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미래 보는 촉 지닌 트럼프

한국의 전략적 가치 각인시키면

사드·FTA 등 각론 해결에 도움

호감, 믿음의 마무리 악수 기대

중앙일보

최 훈 논설실장


건국 이후 63번째가 될 한·미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워싱턴 회동(29∼30일)은 한반도 운명의 분수령으로 꼽힐 만남이다. 북한의 핵 보유 진입 문턱에서 위기의 강도는 최고조다. 더구나 상대는 생전 13번의 결투를 벌인 괴팍한 선동가 앤드루 잭슨(7대) 이후 가장 튀는 럭비공 미 대통령이다. 궁합이 썩 맞지 않을 그와 마주 앉아 한반도의 평화와 미래를 진득이 설득해야 할 문 대통령의 부담 역시 만만치 않을 듯싶다.

트럼프는 장사꾼이다. 땅·건물과 그 부동산의 미래 가치를 보는 ‘촉(觸)’이 엄청나다. 크게 한 건 해 크게 남기는 데 통달한 그는 이를 ‘빅 싱킹(Big Thinking)’이라고 자랑스레 포장해 왔다. 트럼프가 성공의 상징으로 꼽는 뉴욕 맨해튼의 그랜드하얏트호텔은 1970년대 말 슬럼가의 허름한 코모도호텔을 사서 재개발한 경우다. 그의 부친은 “그 호텔을 사는 건 침몰한 타이태닉호의 좌석권을 끊는 것”이라고 말렸다. 하지만 트럼프의 촉에 잡힌 건 호텔 옆 지하철역에서 말쑥한 통근자 수천 명이 매일 쏟아지는 광경이었다. 호텔의 미래에 그는 과감히 베팅했다. 적자투성이의 그 호텔은 연 30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안겨 준 맨해튼의 명소로 탈바꿈했다.

할렘가 젊은이들의 삶을 다룬 명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무대인 맨해튼의 쓸모없는 강변 철도 부지를 헐가로 사들인 이도 트럼프였다. 그 위엔 지금 고층건물 16채의 트럼프 플레이스가 도열해 있다. 3개 홀이 바다로 무너져 내려 파산한 캘리포니아의 풍광 좋은 해변 골프장을 2700만 달러에 인수한 그는 10배를 다시 투자했다. 그 결과인 트럼프내셔널 골프 코스는 ‘페블비치의 라이벌’로 회자되고 있다.

“내가 판단을 내리는 데 의지하는 건 직관과 악수”라고 트럼프는 말한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왠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그 예감을 믿는다”고 했다. 자신이 참여해 대박이 났던 NBC의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Apprentice)’의 제작자인 마크 버넷과의 첫 만남이 그 사례다. “비즈니스 쇼는 돈을 번 적이 없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이미 난 그와 굳은 악수를 나눴다”며 그대로 밀고 나갔다.

이런 ‘트럼프의 촉’과 마주칠 문 대통령의 첫 대면은 ‘대한민국의 가치’를 세일즈해 호감을 얻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미국의 참전으로 탄생한 국가 중 한국은 최고의 성공 모델이다. 미국이 전파해 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의 최전선에 서 있다. 북한·러시아·중국 등 사회주의 진영과 마주 선 전략 요충지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없다”며 미국이 ‘애치슨 라인’을 그어 이 땅을 버리자 이는 곧 ‘공산주의에의 초청장’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가치를 입증한 역사다. 터키·우크라이나·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필리핀 등 어떤 전략적 급소(急所) 이상의 가치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중앙일보

더구나 미국은 동중국해·남중국해 등 동아시아에서 신흥 강대국 중국과 첨예하게 대치 중이다. 세계 최대의 미국 전초기지인 444만 평 평택의 ‘값’이란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만일 한국의 방어와 평화에 문제가 생긴다면 최전선이 될 일본 내에선 핵무장론이 비등해질 수 있다. 미국의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는 도미노처럼 와해될 가능성도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와 함께 미국의 세계질서 관리의 두 축 중 하나인 NPT 체제가 무너지면 트럼프 대통령의 ‘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도 우스운 논리가 돼 버린다.

지난 연말 미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의 여론조사 결과 미국민의 64%가 한국을 지키려는 주한미군의 주둔에 찬성했다. 미국민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 역시 지난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3만6000여 젊은이의 한국전 희생을 대가로 지켜 낸 대한민국은 미국민의 자긍심 속에 늘 자리 잡아 왔다. 역사상 미국의 가장 성공한 투자였으며, 앞으로도 그 정치경제적 가치가 불어날 한국이야말로 자유민주진영에 우뚝 선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관리돼야 할 땅이다. 마치 트럼프 최고의 프라이드인 맨해튼의 ‘트럼프타워’처럼 말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함께 동맹의 골간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무역수지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최전방 동맹인 한국의 지속적 번영이 전 세계와 사회주의권에 주는 유인(誘引)의 메시지는 미국의 가장 큰 ‘미래 자산’이다. 향후 20년간 20조원의 미국산 셰일가스를 수입할 계획도 번영 위에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한국은 최근 10년간 36조원의 미국 무기 체계를 구매해 줬고 베트남·이라크·아프간 참전을 모두 지원해 준 유일한 친구 아닌가.

백악관의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가치’에 트럼프의 촉과 호감을 끌어낼 수 있다면 실타래 각론들은 오히려 쉽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드 체계의 순조로운 배치와 비용 문제, 북핵 해결을 위한 중국 설득, 한·미 FTA 재협상 등등…. 두 정상의 첫 악수보다 호감과 믿음이 더해진 마무리의 굳은 악수를 기대해 본다.

최 훈 논설실장

최훈 기자 cho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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