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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또다시 에어컨 배송대란…올해도 아찔한 설치환경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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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밀려 한밤중 설치 다반사…안전바 보급 이제 시작

뉴스1

지방 대형 전자마트에서 직원들이 에어컨 배송작업을 서두르는 모습.(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2017.5.29/뉴스1 © News1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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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 "하루 평균 다섯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는데 밤 11~12시까지 일이 끝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늘은 설치 일정 한 곳이 취소되는 바람에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간신히 저녁을 챙겨먹었다"

지난 24일 저녁 서울 강남구 소재 A아파트 18층에 국내 대기업 A사 에어컨을 설치하러 왔던 설치기사 박모씨(42)의 말이다.

다시 에어컨의 계절이 왔다. 그러나 위험한 난간에 몸을 의지하며 변변한 안전장비 없이 보조기사의 도움을 받아 에어컨 실외기를 아슬아슬하게 설치하는 풍경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서울서 에어컨 수리기사가 추락사한 것을 계기로 에어컨 제조사에서 튼튼한 '안전바'를 만들어 보급하는 일이 추진되고 있지만 빨라야 내년에 갖추어질 전망이다.

이들은 대기업이 생산한 에어컨을 배달하고 설치하는 일을 하지만 하청업체 소속이다. 2인 1조로 보통 일하면서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설치시간은 에어컨 한대당 2~3시간이 걸린다. 강남 서초 송파 하남 지역을 담당하는 A사의 에어컨 설치 대리점에는 35~40명 정도의 기사가 일하고 있다. 성수기에는 이들 인력으로는 밀려드는 설치물량을 소화하기엔 역부족이다.

에어컨 구매건에 대한 배송 설치는 삼성전자의 경우 삼성전자 로지텍이, LG전자는 LG 계열 범한판토스가 인수한 하이로지스틱스가 물류를 담당한다. 이들 물류 자회사가 직접 기사를 고용하는 것이 아닌, 하청을 주는 구조다. 에어컨 설치기사들은 전국 각 대리점에서 건당으로 물량을 받아 처리한다. 비정규직 하청 기사들은 여름 성수기가 지나면 아파트 빌트인 에어컨 매립이나 보일러 설치 등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박씨는 "요즘과 같은 성수기에는 화장실 갈 시간도 내기 어렵다"며 "설치가 밀린데다 여름 성수기에 바짝 벌어야 하기 때문에 지난 4월부터 토·일요일도 없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설치한 에어컨 대부분 한 달 전에 주문한 제품들이다.

밤에는 실외기 설치가 더욱 위험하다. 하지만 당일 설치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하다는 것이 설치 기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야간 설치의 경우에 이웃들의 소음 민원도 있어서 설치기사는 더욱 애를 먹는다. 박씨는 "오래된 아파트는 난간이 헐거워진 경우가 많고, 빌라의 경우 난간이 부실시공된 곳도 많아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다.

약 7년간 수도권 내 에어컨 설치 하청업체 여러 곳을 다녔다는 그는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고가 나거나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어디에다 대고 말할 곳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분당 등 경기 남부 지역 대리점 소속 설치기사 심모씨(34)는 "설치 대리점이나 센터장들은 대부분 삼성이나 LG 등에서 퇴직한 직원들인데 이들이 회사에 억단위 보증금을 내고 대리점을 내는 구조라 현장의 열악함이나 개선해야 할 점들을 본사에 건의하는 것을 꺼린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나 LG전자의 로고를 붙이고 다니지만 차량은 본인이 사서 배달 다니는 구조다.

지난해 6월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소속 기사 진모씨(45)는 노원구 월계동의 한 빌라 3층에서 혼자 안전장치 없이 고장난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다 난간이 무너지며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

추락사 이후 고용노동부는 산하 안전보건공단과 함께 삼성전자 LG전자 등 에어컨 제조사와 하이마트 등 유통업체, 설치업체 관계자를 불러 대책회의를 갖고 추락사고 재발방치대책을 업체별로 마련해 이행하라고 독려했다.

이후 삼성전자서비스가 방문틀에 고리를 거는 방식의 '안전바'를 제작해 안전보건공단의 강도 테스트를 거쳐 현장에 보급하고 있다. LG전자 역시 공단 자문을 거쳐 '안전바'를 제작 중이다. 설치기사들이 '안전바'를 의무적으로 사용해 추락을 방지하도록 하고, 설치 약관에 안전바를 사용 의무조항을 넣거나 안전바를 사용해 설치하는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보고하도록 하는 등의 대책이 제시된 상황이다. 설치가 위험한 곳에는 설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강화되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성수기내에 안전바가 충분히 보급되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또 안전을 위한 권고사항이 현장에서 잘 지켜지는지 감독하는 것도 또다른 숙제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아무래도 하청에 또 하청을 주는 형태다보니 제조사의 권고사항이 현장까지 다 전달되는지 잘 지켜지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효과적인 사고 방지대책이 나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조사들과 머리를 맞대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tigerk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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