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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25] 일찌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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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98세에도 매일 글을 쓰고 일주일에 서너 번씩 강의를 하며 사시는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이 들려주신 얘기다. 1970~80년대 함께 '철학계 삼총사'로 불린 고(故) 김태길·안병욱 교수님께 "우리 이제 살 날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는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차례씩 얼굴 보면 어떻겠는가?"라고 제안했더니 김태길 교수님이 "정이 들면 들수록 떠나보내는 마음이 더욱 아픈 법인데 뒤에 남는 친구가 얼마나 힘들겠는가"라며 거절하셨단다. 결국 두 분은 먼저 가시고 김형석 교수님만 혼자 뒤에 남으셨다.

내게는 중학교 때부터 만나 온 이른바 '불알친구'가 여섯이나 있다. 대학 시절 우리는 스스로에게 '포이에시스(Poiesis)'라는 멋진 이름까지 붙여주고 지금껏 매달 한 번씩 만난다. 우리는 원래 여덟이었는데 20여년 전 한 친구를 먼저 떠나 보냈다. '철학계 삼총사'처럼 나이 들어 새롭게 만나려면 정들까 두렵겠지만 우리는 워낙 오래 만난 사이라 그런 걱정은 딱히 없다. 게다가 일찍이 한 명을 먼저 보내본 경험도 있어 앞으로도 비교적 담담하게 맞을 것 같다. 다만 나는 그 친구가 떠날 때 미국에 있어서 임종하지 못한 아쉬움을 끝내 지울 수가 없다. 20년 넘도록 매년 여름의 끝자락마다 우리는 먼저 간 그 친구의 무덤을 찾는다.

조선일보

1970~80년대 '철학계 삼총사'로 불린 안병욱·김태길·김형석 교수(왼쪽부터). /양구인문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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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부터 아버지께서 잘 듣지 못하신다. 가끔 찾아 뵐 때마다 바로 곁에 앉아 목청을 높여 말씀을 드려도 힘들어하시니 마음이 아프다. 여러 차례 보청기를 마련해 드리려 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보청기는 난청이 그리 심하지 않을 때부터 착용해야 서서히 적응할 수 있단다. 가는 귀가 먹을 때면 이미 늦었다. 우리 중 한 친구는 퍽 오래전부터 가발을 쓰기 시작해 우리는 이제 그 친구의 머리카락이 가발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어느덧 나머지 대부분도 정수리가 훤히 벗겨져 할배 소리를 듣기 시작했건만 그 친구는 홀로 싱싱한 젊음을 발산하고 있다. 모름지기 세상 일이란 일찌감치 준비해 서서히 익혀야 하는 법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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