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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사설] 익명뒤에 숨어 사법부위상 스스로 깎아내리는 현직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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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법부에서 들려오는 잡음들이 예사롭지 않다. 급기야 내부 인터넷 자유게시판에서 최고 수장인 양승태 대법원장을 '양승태 씨'로 호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니 사법부의 기강 문란이 갈 데까지 갔다는 느낌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 이후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는 하루 수십 개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조사 등을 의결한 것과 관련해 법원 내부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양측이 서로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법관회의 진행 방식을 비판한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이번 사태의 시발점인 이 모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 대한 조롱과 인신공격성 비방이 줄을 잇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선 22일 퇴진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온 것을 시작으로 '양승태 씨'로 호칭한 게시글까지 등장했다. 김창보 법원행정처 차장이 "민형사상 문제가 될 수 있는 글을 자제하라"며 공개 경고를 하고 나설 정도로 도를 넘어섰다.

법원 내부 게시판이 젊은 직장인들의 회사 험담용 사이트처럼 저질화하는 현상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이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판사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행해지는 인격 파괴와 명예훼손에 대해 가장 엄격해야 할 사람들이다. 실제 그들 중 상당수는 이 같은 형태의 명예훼손을 처벌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익명의 그늘에 숨어 이른바 '키보드 워리어'와 똑같은 행태를 보인다는 건 이 나라 사법부의 수준을 의심케 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세계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 개별 구성원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하는 나라다. 이 권위는 법적 지위이기도 하지만 구성원들 각자의 교양과 절제, 도덕률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신뢰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법관 사회의 실제 수준이 이 정도라면 그간 누려 온 위상이 민망해진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성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법부는 3권 분립상의 독립을 구현하는 것은 물론 내부 정치로부터도 독립되어야만 한다. 법원 내 특정 이념세력이 집단화, 정치세력화하고 이들의 목소리가 사법부 인사에 영향을 미치며 그 결과 조직 수뇌부들이 이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사법부 독립은 그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게 된다. 판사들은 지금 자신들의 행동이 스스로의 존립 기반을 허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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