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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서울로 7017, 자칫하면 '죽어버린 식물도감'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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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고가도로가 ‘살아있는 식물도감’으로 재탄생했다기에 가봤다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초여름이라 한창 푸르러야 할 텐데 마치 초겨울인양 잎이 다 떨어져 가지가 앙상하거나 고사하는 식물이 속출하고 있었다.

조선일보

공조팝나무 화분은 군식 분의 사분의 일이 고사로 베어져 전체 사분의 삼만 남았다.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란 말이 전해질 정도로 장수하는 식물이다. 그러나 서울역 서부교차로 쪽 서울로 초입의 주목 한 그루는 이미 죽어서 서울시가 지난 주말에 베어버리고 새 나무로 바꿔 심었다.

손기정 나무로 유명한 대왕참나무도 두 그루나 고사해 다른 나무로 교체됐다. 꼬리조팝나무, 참조팝나무, 공조팝나무, 고광나무, 애기말발도리 등 5종은 모두 화분에 군식된 나무의 3분의 1 내지 4분의 1 정도씩 베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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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에 있는 층층나무 두 그루 중 오른쪽 나무는 잎이 거의 없었다. 새롭게 돋아난 듯 보이는 이파리도 말라가는 모습이었다.


이뿐이 아니다. 서울로 7017에 각각 단 한 그루뿐인 생강나무와 사과나무, 우리나라 토종 식물인 히어리, 마로니에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종인 칠엽수, 중풍을 고친다는 마가목, 백목련, 자목련, 매자나무, 쪽동백나무, 층층나무 등 10종 18그루가 이파리가 거의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말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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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시장 쪽에 심겨있는 계수나무 열 한 그루는 모두 잎이 누렇게 말랐다. 잎의 끝부분부터 타들어가는 모양새였다. 전문가는 나무가 물을 충분히 빨아들이고 있지 못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지난주에 방문했을 땐 물포대가 없었는데, 지난 수요일 방문했을 땐 나무마다 ‘점적관수용 물포대’가 설치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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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반달의 가사에 나오는 계수나무는 11그루 모두 잎이 누렇게 말라 본모습을 잃었다. 꽃 피는 양으로 풍년과 가뭄을 점친다는 이팝나무와 북한 국화인 함박꽃나무, 개나리보다 먼저 피는 영춘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미선나무, 산수국, 돌단풍 등 6종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일주일 간 네 번에 걸쳐 서울로 식재 식물들을 꼼꼼히 관찰해보니 이런 나무의 숫자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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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치기 된 영춘화. 서울로 관리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보행로를 걸으며 마르거나 상한 잎과 줄기를 일일이 잘라냈다. 영산홍은 잘려있는 가지가 삼분의 일이 넘게 보였다.


서울로사업운영팀은 마른 가지들을 일일이 잘라내고 나무 줄기에 물주머니를 링거처럼 달아 고사를 막으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만으로 수목의 고사를 잘 막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서울로 식재 수목 중에는 햇볕이 하루 종일 강한 서울로에 잘 맞지 않는 식물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한 그루가 고사한 주목만 해도 그렇다. 주목은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음수로 분류돼 있다. 음수는 햇빛이 강한 곳에선 스트레스를 받아 잘 자라지 못할 수 있다.

서울로에서 두 달을 채 견디지 못해 잎을 다 잃고 가지만 남은 생강나무도 마찬가지다. 생강나무는 어릴 땐 반드시 그늘에서 키워야 하고 커서도 반그늘에서 재배해야 좋다고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나와 있다.

이런 식물들이 서울로 7017처럼 햇볓이 하루 종일 내려쬐는 곳에서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을까? 그늘을 좋아하는 이런 나무들에게는 서울로에서의 삶 하루 하루가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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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장미마당 쪽 장미김밥 가게 앞에 놓인 시민의견 게시판. 맨 위 가운데에 ‘서울로 7017은 식물학대인 것인가?’라는 포스트잇이 말라가는 식물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로 7017이 ‘살아있는 식물도감’이라고 밝혀왔다. 식물도감은 단순한 식물전시장이 아니다. 식물의 아름다움을 알릴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관리해 생명을 소중히 지켜나가는 모범을 보여야 제 역할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서울로 시민의견 게시판에 한 시민의 지적처럼 ‘서울시가 식물학대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려면 이제라도 식재 수목의 환경 적합성을 다시 따져서 근본대책을 세워야 한다.

[김지혜 프런티어 저널리즘 스쿨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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