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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원효 '판비량론' 잃어버린 조각 일본서 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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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最古의 한국인 저술… 미공개 5행·100자 추가 확인

신라인이 필사해 일본에 전래… 에도 말기에 여러 개로 나뉘어

도쿄 국립박물관 등에 소장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한국인 저술인 원효(元曉·617~686) 스님의 '판비량론(判比量論)' 중 미공개 부분이 일본서 새로 발견됐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HK연구단(단장 김종욱)이 원효 스님 탄신 1400년을 기념하여 24일 일본 가나가와현 가나자와문고에서 가나자와문고와 공동 주최한 '원효와 신라 불교사본(佛敎寫本)' 학술대회에서 게이오대학 오카모토 잇페이(岡本一平) 강사는 "교토 동사(東寺)에서 흘러나와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고서(古書) 필사본 낱장이 판비량론의 단간(斷簡·떨어지거나 빠져서 완전하지 못한 글)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조선일보

24일 일본 가나가와현 가나자와문고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오카모토 잇페이 게이오대 강사가 새로 발견된‘판비량론’필사본 조각(화면)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아래쪽 사진은 필사본 중 가장 분량이 많은 오타니대 박물관 소장본. 오른쪽 사진은 지난해 발견된 오치아이본.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HK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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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가 들어 있던 상자에 '쇼와(昭和) 44년(1969년) 가을, 서향(西鄕)산장에서 바이케이(梅溪)가 기록한다'라고 적혀 있어 '바이케이 구장본(舊藏本)'이란 이름이 붙은 이 필사본 낱장은 세로 25.7㎝, 가로 7.7㎝의 종이 한 장에 1행 20자씩 5행 총 100자의 초서체 한자가 쓰여 있다. 오카모토 강사는 "필사본 낱장은 제작 방법과 글씨체가 그동안 확인된 판비량론 필사본 조각들과 동일해 같은 책의 일부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자 100자 중 앞부분 29자는 일본 승려 젠주(善珠·723~797)의 저술에 인용된 판비량론과 일치하고 나머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원효의 불교 사상을 대표하는 저술의 하나인 판비량론은 완본(完本)이 전해지지 않아 필사본 조각들과 한·중·일의 불교 문헌에 인용된 단편들을 통해 복원이 시도돼 왔다. 판비량론 필사본 조각 중 대표적인 것은 1967년 일본 학자 간다 기이치로(神田喜一郞)가 집안에 전해오던 것을 공개한 뒤 오타니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오타니본(本)'이다. 1행 20자, 105행으로 총 2100자에 이르며 전체의 5분의 1 정도로 추정된다. 또 지난해 오치아이 히로시(落合博志) 교수가 소장하고 있는 1행 20자, 9행 총 180자의 '오치아이본'이 공개됐다.

오카모토 강사는 이날 발표에서 미츠이 기념관(1행 20자, 15행 총 300자)과 고토 미술관(1행 20자, 7행 총 140자)이 판비량론 필사본 조각을 소장하고 있으며 도쿄 국립박물관에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판비량론 필사본들은 모두 한 권의 책이었는데 에도시대 말기에 조각조각 나뉜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일본인 승려가 신라에서 필사해 온 것으로 알려지다가 지난 2002년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 히로시마대 명예교수가 오타니본에서 신라의 구결(口訣)을 기록한 각필(角筆) 흔적을 발견하면서 신라인이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오치아이본에서도 신라 구결 각필이 확인됐다. 고바야시 교수는 '신라 각필이 일본 가나의 기원'이라는 주장을 펴 왔고 판비량론 필사본은 유력한 증거로 간주되고 있다.

김천학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HK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판비량론 필사본 조각도 정밀 조사를 하면 각필 흔적이 확인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른 판비량론 필사본들도 사진을 입수해 연구를 시작했고 조만간 그 결과를 내놓으면 판비량론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판비량론

판비량론은 150여 권에 이르는 원효의 저술 중 유일하게 집필 시기와 장소를 알 수 있다. 끝부분에 '함형(咸亨·당나라 연호) 2년(671년·문무왕 11년) 7월 16일 행명사(行名寺)에서 쓰다'라고 기록돼 있다. 당나라 현장(602~664) 법사가 고안한 불교논리학인 비량(比量)을 그때까지 나온 다른 이론들을 총동원하여 종합 검증한 것으로 중국·일본에도 알려져 널리 읽혔다.

[이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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