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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산책자]‘우리말 맞춤법 지키기’의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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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공인된 동네북이 두 군데 있다. 누구나 마음 놓고 조롱하고 웃음거리로 삼아도 괜찮은 곳들인데, 바로 기상청과 국립국어원이다. 공적 기관들인 데다 정치적 시비에도 전혀 걸릴 일이 없는 곳들이니, 사람들은 아무리 비난을 해도 명예훼손에 걸리거나 잡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별별 욕을 다 해댄다.

경향신문

한번은 소셜 미디어에서 우리나라 어문규정에 대해 한탄하는 선배 출판인과 댓글을 주고받다가 마시던 커피를 뿜은 적이 있다. 맞춤법 기준이 제멋대로여서 모든 사람이 틀리게 만든다는 선배의 한탄에 “뭐가 틀렸는지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하필 편집자를 택한 사람이 문제죠” 했더니, “나만 지키자니 울컥해서!”라는 답이 돌아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억울하다. 왜 우리만 이런 걸 지키고 앉아있나.

국립국어원의 괴상한 어문규정들을 꼽으라면 당장 수십개를 들 수 있다. 이를테면 ‘오래전’은 한 단어로 굳어진 명사이므로 띄어 쓰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 전’은 명사가 아닌 구(句)이므로 띄어야 한다. 이게 말이 되나? 이걸로 아쉽다면 몇 개라도 더 들 수 있다. ‘지난해’는 붙여 쓰고 ‘다음 해’는 띄어 쓴다. 아아, 정말 괴이하기 짝이 없다. ‘다음 해’와 같은 말인 ‘이듬해’는 붙여 쓰는데 말이다. 그러잖아도 늘 욕을 먹는 국어원을 또 한 번 탓하자는 건 아니다. 사실 이런 이상한 규정들을 지켜야 하는 그 사람들이 정말 안됐다. 얼마나 괴로울까.

언어에 규범이 필요한 것은 그것이 화폐나 지식처럼 소통과 교환에서 가치를 부여받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1000원짜리 지폐는 어디서나 1000원이어야 하고, 지식은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승인을 받아야 지식이 되는 것과 같다. 입에서 뱉는 것을 다 언어라고 한다면 세상은 기괴한 소음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소 어문규정에 신경 쓰지 않다가도 남의 틀린 말에 예민하다. 언어 규범은 윤리적 규범처럼 가치규범이 아니요, 맞춤법이 틀렸다고 경찰이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문자메시지에서 맞춤법을 자꾸 틀리면 애인도 실망하여 떠나버린다. 언어 규범이 상대를 판단하는 인격적 기준의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어문규정을 다룰 때의 난점은, 언어가 언중의 사용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임에도 사회적 소통을 위해 규칙을 만들지 않을 수 없다는 데서 나온다. 그 시차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나와 내 주변에서는 다들 ‘주구장창’이라고 하는데, 왜 국어원만 ‘주구장창’이 틀렸다고 주구장창 우기면서 ‘주야장천’이 옳다고 하느냐는 것이다. 내가 쓰는 말이 과연 주관적인지 보편적인지 판단할 초월적 심판관이 없다는 게 언어의 원래 특징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립국어원이라는 공적 기관에 그 판단을 잠정 위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이라고 만능이랴. 국어원의 표준어 규정은 한 손에는 규정의 일관성을, 다른 손에는 언중의 변덕스러운 용례를 든 채 어느 것도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단서조항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한다. 규칙이 최소화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누더기가 되고 있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문제가 외래어 표기법으로 옮아가면 더 소란스럽다. 외래어 표기야말로 ‘발음대로 적는다’는 대원칙과, 원어의 음운에 한글 자모를 일정하게 대응시킨다는 일관성 원칙이 처음부터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르다노(Giordano) 브루노를 적을 때는 별 문제 없는 규칙이 화가 조토(Giotto)를 적을 때는 상황을 매우 ‘거시기’하게 만든다. 조토가 뭐냐 조토가. ‘조토’라는 라틴계 언어의 경우 그쪽 사람들 발음대로 된소리로 적어야 한다는 어느 출판사의 주장까지 적용하면 상황은 더 거시기해진다. 애초에 t나 c의 음가에서 된소리와 거센소리를 구분하지 않는 언어를 두고 현행 거센소리 표기는 틀리고 된소리 표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주관적 경험을 가지고 합의의 문제를 해석하는 오류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실은 언어가 살아있는 존재이자 사회적 약속이라는 두 측면을 다 가진 데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측면도 있다.

매일 말과 글을 가지고 씨름하는 편집자들은 대다수 언중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들만을 비로소 쓰는 보수적 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 틀렸다고 나오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요즘 국립국어원은 ‘예쁘다’와 함께 ‘이쁘다’도 옳은 말이고, -강, -산, -인, -족 등을 외래어에 쓸 때 붙여 써도 된다고 허용하는 등 여러 규정들을 전향적으로 바꾸는 듯하다. 매일 생겼다 사라지는 유행어에다 나랏말씀이 혼란을 더하는 상황에서도,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편집자, 학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말로 글을 맺는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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