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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구청 단속에 뇌사 빠졌다 6일 만에 숨져···‘갈치 노점상’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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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네 식구 생계 책임

물건 급히 치우다 뇌출혈

하루고작 2~3만원 벌이

“노점 단속 자체가 폭력”

“이게 뭐냐, 얼음 다 녹는다, 뚜껑을 덮어놔야지….”

60대 노점상이 뙤약볕에서 갈치를 챙기며 한 이 말은 유언이 됐다. 지난 19일 서울 강북구 삼양사거리 인근에 강북구청 용역직원들이 노점상 단속을 나왔다. 노점을 하던 박모씨(61)는 단속반이 흐트려놓은 아이스박스에 뚜껑을 덮고 돌아섰지만 몇 걸음 못 가 주저앉았다. 국민안전처가 전국에 폭염특보를 내린 한낮의 일이다. 박씨는 인근 병원에 옮겨졌지만 뇌출혈로 이미 뇌사 상태였고, 수술조차 해보지 못한 채 25일 오후 결국 세상을 떠났다.

박씨는 고구마도 떼어 팔고 갈치도 갖다 팔았다. 그날도 오전 10시쯤 인근 삼각산동 집에서 나와 갈치를 담은 아이스박스 네 개를 길에 깔았다. 오후 2시쯤 신고를 받은 단속반이 출동했다. 3명의 직원은 으레 해왔듯 박씨에게 ‘물건을 빨리 다 치우라’고 재촉했다. 박씨는 지인과 서둘러 갈치 상자를 챙기다 쓰러졌다.

박씨는 그간 여러 차례 단속으로 쫓겨났지만 이 자리로 계속 되돌아와야 했다. 한때 전국노점상연합에 가입도 했지만 벌이가 시원찮자 서울 전역을 떠돌기 위해 연합에서도 탈퇴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단속은 심했고 박씨는 번번이 자신의 동네로 돌아왔다. 최근에도 박씨는 두 차례 단속에 걸려 20만원씩 벌금을 내고 물건을 되찾아왔다.

젊어서부터 노점을 꾸려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온 박씨는 15년 전쯤 남편이 쓰러진 뒤로 병원비까지 대야 했다. 홀로 두 아들을 키우고, 남편이 입원한 병원에 매달 70만원씩 보냈다.

주변 사람들은 박씨가 평소 형편이 어려운 주변 어르신들에게 “반찬 하시라”며 팔던 생선을 잘라주기도 하고, 더운 날씨에는 음료수도 챙겨주곤 했다고 전했다.

사고 당일 박씨를 도운 지인 김정자씨는 “변변한 옷 하나 없어 ‘옷 좀 사 입으라’고 말을 해도 ‘알겠다’고 하며 웃기만 하더니 이렇게 가버렸다”며 가슴을 쳤다.

구청은 “단속 과정에서 부당한 폭력 행위는 없었고 박씨가 쓰러지자 용역직원들은 심폐소생술을 하고 119를 부르는 등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단속 현장을 지켜본 서원자씨는 “하루 2만~3만원 벌려고 나온 노점한테는 구청의 단속 자체가 바로 폭력”이라고 했다.

구청 관계자는 “용역직원들도 정신적 충격이 굉장히 크다”며 “구청이 도의적 측면에서 박씨 가족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는 방안이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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