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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알바와 사장님의 시각차…"최저임금 1만원 당장"vs."시기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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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소상공인·자영업자는 적용 유예기간 둬야"

연합뉴스

편의점 아르바이트
(서울=연합뉴스) 이승환 기자 = 2년차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 박모(44·여)씨가 22일 오후 12시30분께 서울 영등포구 매장에서 손님을 받고 있다. 2016.6.22. iamlee@yna.co.kr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이승환 기자 =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인상되면 저한테 투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편의점에서 만난 아르바이트 근로자 박모(44·여)씨의 눈 밑은 거무스름해 한눈에 피로함이 느껴졌다.

그는 평일 오전 7시 30분에 일을 시작한다. 주 5일, 하루 7시간 근무하는 박씨는 시간당 6천470원의 법정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받아 매달 100여만원을 번다.

딸 학원비와 공과금 등을 빼면 실제 생활에 쓸 수 있는 돈은 40여만원에 불과하다. 문화생활은 꿈도 못 꾼다. 그나마 오빠 집에 얹혀사는 게 다행이다.

최저임금 1만원이 실현되면 박씨는 매달 50만원을 더 벌게 된다. 출근길에 담배나 삼각김밥을 사려고 온 직장인 손님을 응대하느라 정신없이 일하던 박씨는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어떨 것 같으냐고 묻자 그제야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박씨는 "나도 뭔가를 배우고 싶다. 자격증도 따고 싶고, 주말에 딸과 영화도 보러 가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동덕여대 인근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휴학생 조모(22·여)씨의 사정도 박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급 6천700원을 받아 매달 60만원을 손에 쥔다. 휴대전화 요금, 생필품 비용, 교통비만 내도 월급의 3분의 1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돈을 최대한 아끼려고 점심, 저녁은 제과점이 제공하는 빵으로 해결한다. 아침 메뉴도 편의점에서 산 빵이다.

5평 남짓한 원룸에 사는 조씨는 "1년 새 옷 한 벌 못 샀다. 연애는 꿈도 꾸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도 거의 못 나가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는 당장 내년부터 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현재 최저임금만으로는 박씨와 조씨처럼 '인간다운 삶'을 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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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 촉구하는 서비스 노동자들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19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경총회관 앞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조합원들이 최저임금 인상과 이를 방해하는 적폐세력들의 청산을 촉구하고 있다. 2017.6.19 superdoo82@yna.co.kr



구인·구직 포털 알바천국이 이달 8일부터 16일까지 전국 알바생 1천42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 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 알바생의 69.3%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들 가운데 46.6%가 그 이유로 '현재의 최저임금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아서'를, 27.4%는 '저임금 노동자의 삶이 개선될 것이므로'를 꼽았다.

그러나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인상되면 사업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몇 년째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임금마저 오르면 폐업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며 불안감을 호소한다.

서울 송파구 문정 법조단지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37)씨는 "1만원이 아니라 9천원까지만 올라도 망할 판"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망한 상권이라는 전망을 믿고 식당을 열었으나 검찰청과 법원이 이전해온 뒤에도 매출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한 달 매출 1천800만원 중에 월세, 재료비, 직원 4명 임금을 주고 나면 현재로써는 손에 남는 게 없다고 한다.

김씨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오를수록 나에게는 적자가 된다"면서 "나도 서민으로서 장기적으로 최저임금이 올라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경기가 회복되면 그때 천천히 올리는 게 모두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수입의류매장 3곳을 운영하는 A(58·여)씨도 "최근 '강남 아줌마'들마저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옷 한 벌도 팔지 못하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직원 축소가 불가피한데 이게 정부가 원하는 일자리 창출 정책인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자영업자들의 생각에 동의하는 저임금 노동자들도 있다. 직원 수를 줄이면 그 피해는 노동자들도 보기 때문이다.

양천구의 한 커피숍에서 일하는 30대 여성 권모씨는 "고용주가 아닌 우리 입장을 생각해봐도 무작정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라는 건 무리가 있다"면서 "당장은 듣기 좋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말 같지만,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최저임금을 인상하더라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처한 현실을 세밀하게 고려해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문겸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 원장은 "착취당하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최저임금 계층의 삶의 질을 높여줘야 하는 건 큰 틀에서 맞다"면서도 "그러나 최저임금 지급 주체의 다수가 근로자 10인 미만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다.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저임금을 올릴 수 있는 고용주는 다 올리되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에게는 적용 유예기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당한 폭으로 최저임금을 올리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자영업자나 영세상인에 대한 지원 방안 없이 올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들에게 타격이 심하지 않은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a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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