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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천상륙작전이
가능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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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50년 9월 14일 오후 4시쯤
부산을 떠난 배 한 척이
경북 영덕의 장사리로 향합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배는 좌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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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의 정체는 ‘문산함’
772명의 학도병이 타고 있었죠
그들은 영덕 장사리의 고지를
점령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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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적 후방에 상륙해 보급로를 차단하라.
그곳을 차단하지 못하면 7번 국도가 뚫려
부산이 위험하다.”
- 작전명령 제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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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작전명령 제 174호*는 원래 미군의 임무였습니다
하지만 눈이 파랗고 머리가 노란 미군은
북한군을 교란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 났죠
그래서 북한군과 생김새가 유사한
학도병 772명을 모았습니다
* 일명 장사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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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학도병의 나이는 대부분 18세 전후
간혹 중학생도…
무기와 거리가 멀었던 이들은
2주간 속성 훈련을 받고 문산함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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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설상가상으로 배는 태풍에 휩싸여 좌초
적과 싸워보기도 전에 많은 병력이 수장됐죠
하지만 살아남은 병사들은 간신히
소나무에 밧줄을 걸어 해안선에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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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5~6미터나 되는 파도가 배를 두들기고,
어둠 속에서 적의 포탄 세례와 총알이….”
- 강정관 (당시 만 18세)
“군장을 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뛰어드는 대원들은 모두 물속에 빠져 죽은 것 같았다.”
- 김영덕 (당시 만 1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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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0시간 동안 계속된 아비규환 끝에
결국 고지를 탈환했지만
사실 무리하리만큼 용감했던 이 작전엔
‘진짜’ 목적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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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대규모의 연합군이 장사리에 상륙했다고 오인한
북한군은 낙동강 전선에 최정예 부대를 파견했고
북한군의 시선이 동해로 돌아간 틈을 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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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동지들이 수행한 전투는 찬사를 받을 만합니다.
당신들의 용맹과 희생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영원히 빛나는 귀감이 될 것입니다.”
- 맥아더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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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안타깝게도 학도병들은 예상보다 길게
장사리에서 북한군을 맞서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식량은 건빵과 미숫가루 3일치가 전부
장사리를 탈출하던 날까지
학도병들은 포탄에 산화하고 물에 빠지고
구조선에 오르지 못해 포로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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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공식적으론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
소수의 생존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행방불명인 상태죠
1997년 갯벌에 뒤덮인 선체가 발견되고서야
이 비사가 공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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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군사기밀상 군번도 기록도 없이 잊혔던
장사리 학도병들
이젠 우리가 기억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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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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