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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고리 대부업에 무너진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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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A씨 밤낮으로 폭언·욕설에 시달려

(부산=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오면 저도 모르게 등에서 식은땀이 나요."

경찰이 지난 3월에 적발한 한 등록 대부업체의 불법 채권추심에 시달린 20대 여성 A 씨는 아직도 당시의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차례의 설득 끝에 전화로 인터뷰에 응한 A씨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가 아니면 절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시설에서 기간제 직원으로 일하던 A씨의 악몽은 지난해 가을 길에서 우연히 주운 대출안내 명함 한 장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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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업 전단지 일수
[연합뉴스TV 캡처]



부모를 모시고 살던 A씨는 300만원이 급하게 필요해 발을 동동 구르다 명함에 적힌 전화로 연락했다.

지자체에 등록된 업체라는 설명을 듣고 문신에 칼을 든 악질 사채업자는 아닐 것이라고 믿었다.

전화를 받은 상대 남성은 한 커피숍에서 상담 겸 만남을 제안했다. 현장에는 남자 두 명이 나왔다.

이들은 A씨에게 350만원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매달 이자 20만원을 내고 2년 뒤에 원금을 모두 갚는 조건을 제시했다.

A씨는 일단 급한 마음에 대출 조건에 동의했지만 상대는 그에 앞서 A씨 명의의 통장과 카드를 요구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A씨가 거절하자 친절하고 상냥하던 상대의 태도는 돌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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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범죄, 불법대출의 덫 (PG)
[제작 조혜인] 일러스트



남성들은 여러 사람이 있던 커피숍에서 A씨에게 온갖 욕설과 폭언을 해가며 차량 주유비 등 출장비를 요구했다.

"너 지금 장난해? 처음부터 이런 건 줄 몰랐어? 대출받지도 않을 거면서 어디서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야?"

A씨는 "태어나서 처음 듣는 욕을 듣고 앉아있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돈도 필요했고, 주위 시선이 너무 따가워 통장과 카드를 넘겼어요"라고 말했다.

대출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처음 몇 달간 이자를 꼬박꼬박 낼 때까지는 해당 업체와 통화할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A씨가 독감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이자 납부가 늦어지자 협박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상대의 말은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났다. 건강 상태를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밤낮으로 전화가 걸려왔고,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가 하루에도 몇십 통씩 들어왔다.

상대는 A씨 부모는 물론 직장에도 알리겠다며 이자 납부를 독촉했다. 욕이 없으면 대화가 안 됐다.

가장인 A씨로서는 직장 내 기간제 신분 탓에 행여나 이번 일로 해고되면 먹고 살길이 막막한 처지였다.

A씨는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자고 싶어도 걱정이 돼 며칠 내내 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말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A씨는 위경련으로 쓰러지기에 이르렀다.

부모와 지인들에게 겨우겨우 돈을 빌려 이자를 갚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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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그러던 중에 경찰의 수사가 시작돼 대부업체 운영자 등이 구속된 이후 더는 전화가 걸려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300만원을 빌린 A씨는 올해 3월까지 문제의 대부업체에 이자만 200만원을 냈다. 6개월 기준으로 이자가 600%가량이었다.

A씨는 올해 초 직장에서 근무 계약 기간이 만료돼 구직이 필요한 상태다.

구직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만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A씨는 "직접 돈을 벌어야 두번 다시 대부업자들에게 시달릴 일이 없을 텐데 이러고 있는 게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pitbul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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