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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펜 내려놓고 진짜 춤을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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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평론가들의 전통춤 도전 '무탐: 춤추는 평론가'

진옥섭·장인주 등 5인 출연 "글 대신 몸으로 써낼 춤 기대돼"

"피터 한트케의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이란 책 있지 않습니까. 지금 딱 그런 심정입니다. 무용을 지극히 사랑해 30년 넘게 무용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막상 춤에 도전하고 보니 춤이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나 느낍니다."(진옥섭 공연연출가·평론가)

"1992년 전북 고창에서 발견한 '고깔소고춤'은 그동안 봤던 고깔소고춤과 결이 완전히 달랐어요. 그때 어르신들에게 배웠던 귀한 작품을 글 대신 몸으로 표현할 생각을 하니 전율을 느낍니다."(김영희 무용평론가)

조선일보

송파산대놀이 보존회장인 이병옥 용인대 명예교수가 선보일 ‘산대무’. /한국문화의 집


무용가에게 비평의 화살을 쏘았던 평론가와 학자들이 이번에는 거꾸로 과녁을 자청했다. 직접 전통춤에 도전하는 것. '탈춤·마당극의 대부'로 불리는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 송파산대놀이 보존회장인 이병옥 용인대 명예교수, 우리 춤 연구가로 이름난 김영희 무용평론가, 전통춤을 배운 뒤 프랑스 발레 유학을 다녀온 장인주 무용평론가, 공연 연출도 함께하는 진옥섭 무용평론가 등 5인방이 그 주인공이다. 오는 27일 오후 8시 한국문화의 집에서 '무탐(舞貪): 춤추는 평론가'라는 전통춤 공연을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10분 정도의 토크를 나눈 뒤 십여 분간 춤을 추는 '토크 공연' 형식이다.

무용을 전공했거나 오랫동안 춤을 춘 이들이지만 다시 무대에 도전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었다. 20대같이 몸이 움직여줄까도 고민이었다. 진옥섭 예술감독은 "춤을 다시 추고 나면 상대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고 분명 글도 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자신의 자전적 스토리도 곁들였다. 1970년 대학가 문화운동 1세대로 꼽히는 채희완 명예교수는 봉산탈춤 중 '목중 춤'으로 무대에 도전했다. 목중은 먹중, 묵승(墨僧) 등으로 불리는데 '검은 색깔의 승려'라는 뜻이다. 노승(老僧)을 놀리고 꾀면서 익살스럽게 춤춘다. 이병옥 명예교수는 느린 염불과 빠른 타령 가락을 엮어 '산대상좌춤'을 선보인다. 사방을 수호하는 신에게 예를 갖추고 나쁜 액을 막는다는 춤이다. 김영희 평론가가 보여주는 고깔소고춤은 덩더꿍 장단에서 굿거리, 자진모리로 넘어갈 때 매도지 가락(다른 장단으로 넘어갈 때 사용하는 특수한 장단형)이 춤하고 맞아떨어지는 구성력을 갖췄다. 2008년과 2011년에 무대에 오른 뒤 다시 도전한다.

장인주 평론가는 진옥섭 예술감독이 과거 전통 무용 자료를 찾다가 "그 장인주가 당신이냐?"며 설득해 무대에 오르게 됐다. 어린 시절 인간문화재 이동안(1906~1995) 명인에게 춤을 배우며 주목받아 1970년대 무용 잡지에 실린 걸 진 예술감독이 발견한 것이다. 장 평론가가 보여줄 작품은 '승무'. 그는 "대학시절 발레로 전공을 바꿔 프랑스 바로크 무용단 무용수로 무대도 여러 번 섰지만 어린 시절 손끝 발끝으로 느꼈던 전통춤의 흥과 혼이 여전히 근육 속에 박힌 듯하다"며 "이동안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셨던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말했다.

즉흥적인 개인 춤인 '허튼춤'을 선보일 진옥섭 예술감독은 "흥이 틔운 펜 촉이 몸을 통해 다시 예리한 문장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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