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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현장에서] 기본료 폐지 → 장기적 검토 → 요금 할인 확대 … 중심 못잡는 국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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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료 OECD 평균 60~85% 수준

공약 무리하게 밑어붙여 비난 자초

기대감 가졌던 국민들 실망만 커져

시장 현실 감안한 정책 펴나가야

중앙일보

박태희 산업부 기자


“(통신) 기본료 폐지는 (업계) 자율 사항이다”.

통신사업자 입에서 나올법한 이 말은 놀랍게도 지난 20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나왔다.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통신비 경감 대책 4차 보고를 받고 나서다.

그다음 말은 더 놀랍다. “(기본료 인하는) 장기적 검토 사안이다. 그러나 국정기획위는 활동 시한이 정해져 있어 우리가 (기본료 인하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이달 초만 해도 “기본료 폐지는 국민과 한 약속”이라던 국정기획위의 태도가 돌변한 셈이다. “미래부 보고는 안 받겠다”, “최후통첩이다”는 표현을 써가며 미래부와 이동통신사를 거칠게 몰아붙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가속페달을 밟다 급브레이크로 모드를 전환한 국정기획위는 22일 여당과 함께 가계 통신비 인하안을 발표한다. 인하안에는 ‘휴대전화 요금할인율을 현행 20%에서 25%로 확대’, ‘공공 와이파이 확대’, ‘보편적 요금제 도입’ 등이 담길 예정이다. 논란을 일으킨 기본료 폐지는 발표에서 제외됐다.

요금 할인은 단말기 구입 보조금을 받지 않은 고객이 이통사와 서비스 기간 약정을 하면 요금을 일부 깎아주는 제도다. 2년 또는 3년간 매달 요금을 내기로 약속한 대가로 월 몇천원가량을 낮춰주는 것이다. 녹색소비자연대의 분석에 따르면 요금 할인율을 5%포인트 올릴 경우 가입자당 혜택 받는 액수는 월 1500∼2000원가량 된다. 기본료(1만1000원) 폐지와는 액수 차이가 크다.

상황이 이런데 국정기획위 측은 “기본료의 제한적 폐지보다는 25% 요금 할인이 가계통신비 인하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고 있다.

중앙일보



“비싼 통신요금을 돌려드리겠다”며 국민 기대감을 한껏 높여 놓고 물러서자 당장 국정기획위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명확한 공약 후퇴”, “이통사에 굴복한거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한다. 일각에서는 “통신 비전문가들이 시장 상황을 정확히 모른 채 나섰다가 미래부와 이통사에 크게 한 수 배운 꼴”이라는 조롱도 나온다.

2015년도 OECD 발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이동통신 요금은 OECD 국가 평균 대비해서 15~40% 정도 저렴한 것으로 조사됐다. 요금 수준을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네트워크 품질, 속도 등이 세계 최고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특정 요금 항목을 강제 폐지 시켜야 할 상황은 아닌 셈이다. 애초부터 기본료 폐지 정책이 무리수였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혼선을 빚은 기본료 폐지 정책은 정부와 시장 관계자 모두를 패자로 만들었다. 국정위는 신뢰를 잃었고, 국민들은 실망감만 안게 됐으며, 이통사는 기득권을 양보하지 않는 공공의 적으로 낙인 찍혔다. 심지어 미래부도 기업 편이나 드는 철없는 공무원 집단으로 매도됐다.

국정 에너지만 소비한 이런 논란은 ‘정치’만 앞세우고 ‘정책’은 없었던 데서 비롯됐다. 정치는 민심에 부합하는 말로 박수를 받으면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정책은 다르다. 정치는 구호지만 정책은 실천이다. 시장에 대한 존중 없이 성공하기 어렵다. 다층적 욕망을 시장이라는 틀 안에서 슬기롭게 버무려야 정책으로 성공할 수 있다. 정교하게 설계된 정책들이 하나둘 쌓일 때 후생 수준은 높아지고 시장은 건강해진다. 이번 기본 요금 폐지 논란이 새 정부 내내 교훈이 돼야 하는 이유다.

박태희 산업부 기자 adonis55@joongang.co.kr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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